외국은 기업 상속에 세금까지 깎아주는데
한국은 온갖 법률 강화해 승계를 억제하니
기업 과잉규제 말고 상속세율부터 낮추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 김정호 기자 ]
국정감사 기간이다. 사무실에 국회TV를 틀어놓을 때가 잦다. 고성 다툼 속에도 생각해볼 이슈가 적지 않아서다.
며칠 전 정무위 국감에서다. 한 의원의 질의에 귀가 뜨였다. “정부가 기업 경영권을 공개적으로 탈취하는 것 아닌가.”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대한 질의다.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수직 계열화된 기업 간 거래도 일감 몰아주기로 처벌하면 사실상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해지니 자본주의의 본질에 어긋난다는 주장이었다.
의미심장한 얘기다.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해 상속세를 내려면 회사를 팔아야 할 처지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2, 3세들은 기본적인 부를 형성하기 위해 쏟아지는 비난에도 계열사를 통해 일감을 몰아가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상속세율은 그대로 둔 채 이런 길까지 막아 버리면 어떻게 경영권을 상속하느냐는 것이다. 그 길을 막으려면 상속세법부터 고쳐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벌은 뭇매를 가해야 시원하고, 2, 3세 상속은 원천 봉쇄해야 속이 풀리는 게 요즘 세태다. 그런데도 이런 발언을 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자체가 법 원칙에서 벗어난 과잉 규제라는 너무도 당연한 지적에도 비난이 쏟아지는데 말이다.
우리 상속세율은 50%다. 하지만 주식으로 직계비속에게 기업을 물려줄 때는 65%로 올라간다. 극히 일반적인 상속 형태에 대한 세율이다. 지구상에서 상속세를 이렇게 뜯어가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직계 자녀들이 기업을 물려받으면 세금을 깎아주고, 그들이 경영하는 동안엔 세금을 내지 않도록 자본이득과세를 이연해 주기까지 하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상속세가 아예 없는 나라도 많다. 1972년 캐나다가 상속세를 폐지한 이후 호주 홍콩 싱가포르 스웨덴 등 수많은 나라가 뒤를 잇고 있다.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2, 3세들은 굳이 경영을 하려 들지 말고, 큰 그림 그리는 자리나 맡으라고 말이다. 스웨덴의 발렌베리를 사례로 든다.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하는 말인가. 발렌베리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공익재단을 두고 있다. 각 세대 경영자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딴 공익 재단을 남겨 경영권을 공고히 한 뒤 다음 세대가 기업을 지배할 수 있도록 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도 그런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변경하고 있다. 대부분의 재산을 자신과 가족의 재단에 기부한다는 비난이 일자 두 사람은 아예 상대방 재단에 ‘교차 기부’를 한다. 여기에 세금은 전혀 없다. 그리고 재단의 씀씀이는 자신들이 관리한다. 국민을 위해 써야 할 세금의 용처를 자기네 마음대로 정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자식들은 상속세를 전혀 내지 않고도 재단을 통해 기업을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린 불가능하다. 한국은 공익재단에 대한 기부도 지분의 5%까지만 면세 혜택을 받는다. 그 이상 출연하려면 최고 65%의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기업을 상속할 때와 다르지 않다.
흔히 외국에는 가족이 물려받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들 한다. 그렇지 않다. 전 세계 기업의 3분의 2가 가족경영 회사고, 이들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벅셔해서웨이, 포드, 월마트 등을 보라.
다른 나라는 오히려 가족경영을 돕는다. 미래 지향적이고 지속 가능해서다. 세제 혜택은 물론이다.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의 경영권 방어 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다. 포드는 1%의 가족 지분에 40%의 의결권을 부여한다. 발렌베리는 한 주로 10배, 벅셔해서웨이는 무려 1만 배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생각해보라. 65%를 세금으로 낸다. 뭐가 남겠나. 이미 경영권은 내 것이 아니다. 서둘러 팔아 치워 현금이라도 확보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 된다. 쓰리세븐, 농우바이오, 유니더스, 락앤락 같은 강소기업이 그렇게 남의 손에,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상법 공정거래법 등 모든 법이 기업을 옭아맨다. 부자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 반(反)기업 정서를 거리낌 없이 법제화하는 정부다. 기업은 ‘정부의 공개적인 기업 탈취’에 손발 묶인 채 린치를 당할 뿐이다. 속수무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