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며느리까지…직원 친인척 108명 정규직 채용

입력 2018-10-17 17:39
서울교통공사의 '막장 고용세습' 파문

인사처장 아내도 정규직 전환
취준생들 "지금이 신분사회냐"

회사측 '채용비리 조사'
노조가 조직적으로 방해하기도

공사 응시생 110명 행정소송
靑 게시판 "채용 비리자 구속을"


[ 이해성/조아란/박재원 기자 ]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교통공사(옛 서울메트로) 정규직 직원들의 ‘고용세습’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정국을 흔들 뇌관으로 떠올랐다. 공사가 1200여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직원 가족 또는 친척 108명을 부당한 방식으로 채용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서울시는 17일 “사실관계를 명백히 하기 위해 감사원 감사를 공식 요청한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 인사처장 김모씨는 본인의 배우자가 108명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감췄다가 적발돼 이날 직위해제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채용비리자를 구속하라’는 등 분노한 시민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국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도 여야가 난타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적자 4000억원 공기업에 무슨 일이

자유한국당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285명 가운데 108명이 정규직 직원들의 자녀 또는 형제, 배우자, 삼촌 등 가족이거나 친척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상대적 고위직’인 1~4급 간부가 차량사업소, 승강기안전문관리단 같은 현장직 7급보 등에 자녀 등을 끌어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108명 중 34명은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일어난) 2016년 5월28일 이전 전환자로, 13년에 걸쳐 누적 채용된 인원”이라고 밝혔다. 구의역 사고 이후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자 안전업무를 직영화하는 과정에서 기존 34명에 74명을 추가로 채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74명 가운데 36명은 공개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는 “용역업체나 자회사에서 이미 근무 중이던 인원이라 제한경쟁으로 뽑았다”며 “기존에 안전업무를 수행하던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407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적자 지방공기업이다. 매출은 1조원을 조금 넘지만 인건비(7750억원)가 과도하게 높은 데다 요금 대비 원가 상승 요인이 누적돼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노조, ‘친인척 고용’ 실태 조사 막아

친인척 채용 실태를 인지한 사측의 조사를 공사 노조가 조직적으로 방해한 정황도 드러났다. 공사는 지난 3월 1200여 명의 정규직 전환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전 직원 1만7000여 명을 대상으로 ‘친인척 재직현황 조사’를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서울교통공사 노조(1노조)는 전 조합원에게 “개인 신상정보에 대한 상식 밖의 마구잡이식 조사”라며 “가족 재직현황 제출을 전면 거부하라”는 내용의 공지문을 보냈다. 한국당은 이날 “1200여 명의 무기계약직 입사자 가운데 민주노총이 내려보낸 기획 입사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즉각 반박했다. 노조 측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면 조사와 수사를 통해 밝히면 될 일”이라며 “불순한 의도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채용비리, 고용세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당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취업준비생들 분노

고용세습 논란은 이미 법원으로 옮겨 갔다.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일부가 지난 2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은 현재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있다. 공사 공채 직원 400여 명과 공채에 응시했다 탈락한 취업준비생 등 110명은 ‘서울교통공사 특혜반대 법률소송단’을 구성하고 행정소송을 냈다. 18일 3차 공판이 열린다.

고용세습의 실상이 드러나자 취업준비생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공기업 취업 전선에 뛰어든 김모씨(28)는 “올해만 50군데 넘게 이력서를 넣었는데 다 떨어졌다”며 “정의 공정 인권을 얘기하던 노조와 진보 진영이 연루된 이번 비리에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 진영에서 노조를 항상 ‘제 밥그릇만 챙기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데 반감을 느꼈는데 현실은 그게 맞다는 게 서글프다”고 꼬집었다. 고려대 경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씨(24)도 “민주노총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가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상당 부분 공감했는데 피해자 한 명을 구실 삼아 자기들 잇속만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도 성난 취업준비생 등이 몰리고 있다. 한 청원자는 “어떻게 가족끼리 채용할 수가 있느냐”며 “채용비리를 지시한 자와 채용된 자 모두 수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해성/조아란/박재원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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