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된 '혈중알코올농도 측정' 공식 바뀌나

입력 2018-10-16 18:08
음주운전자 '솜방망이 처벌' 부르는 측정방식 논란

체내 알코올 농도 추정 못해
한국 음주문화와 맞지 않아
대법 "신빙성 없다" 판결도
형사정책硏, 새 측정법 논의


[ 안대규 기자 ] ‘해운대 음주운전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음주 운전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처벌의 기초자료가 되는 혈중알코올농도 추정 공식(위드마크 공식)을 대폭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발된 지 87년, 국내 도입된 지 33년 된 이 공식 때문에 음주운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위드마크 공식이 음주 후 약 90분간 지속되는 혈중알코올농도 상승곡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데다 한국인의 알코올 분해 능력, 체질, 신장, 음주문화 등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 개선의 목소리가 커지자 형사정책연구원은 ‘한국판 위드마크 공식’ 개발을 위해 종합병원, 자동차 제조사 등과 논의를 시작했다.

위드마크 공식은 1931년 스웨덴의 독일계 생리학자 위드마크가 음주 후 혈중알코올농도의 감소 경과를 측정해 공식으로 만들었다. 음주 후 혈중알코올농도가 하강곡선을 그린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됐다. 일정 시간(t) 경과 후 혈중알코올농도(Ct)는 ‘섭취한 알코올양(A)을 ‘체중(p)×성별에 따른 상수(r)’로 나눈 값에서 시간당 알코올 분해량(βt)을 뺀 수치라고 설명했다.

의학계에서 체내 알코올농도가 음주 후 약 90분까지는 상승곡선을 그린 뒤 하강곡선을 그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공식의 신빙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를 악용하는 음주운전 사범도 늘기 시작했다.

예컨대 A씨는 음주 후 3시간 뒤 교통사고를 내고 30분 뒤 경찰서에서 음주측정을 당했다.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 농도는 0.05%였다. 현행법상 0.05% 이상은 면허정지, 0.1% 이상은 면허취소다. A씨는 음주 후 3시간 뒤가 아닌 ‘곧바로’ 사고를 냈다고 거짓말했다. 음주 직후 혈중알코올 농도 ‘상승기’에 접어들어 측정시점 농도가 사고시점보다 높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렇게 음주운전 혐의를 벗게 된 A씨의 허위진술을 현재로선 적발할 방법이 없다. 대법원도 여러 차례 위드마크 공식에 의한 혈중알코올농도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문심리위원인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인의 음주습관에 맞는 ‘한국판 위드마크 공식’이 개발돼 음주운전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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