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장하성 펀드'의 실패 극복할까

입력 2018-10-10 09:57


1년 넘게 공석이었던 국민연금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선임됐다. 모비딕급 규모를 자랑하는 국민연금의 활동으로 국내 자본시장에 스튜어드십 코드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란 전망이다.

10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안효준 전 BNK금융지주 사장은 지난 8일 임명장을 받고 기금운용본부장으로서의 업무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난 7월30일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결정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위탁자의 돈을 받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의 책임있는 투자를 위한 주주권 행사 행동강령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기업 경영진을 견제하지 못한 기관투자자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생겨났고, 2010년 영국이 최초로 도입했다. 한국은 2016년 12월 금융위원회가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인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공표했다.

◆장하성펀드는 왜 실패했나?

스튜어드십 코드와 궤를 같이하는 주주 행동주의를 내건 국내 최초의 펀드는 '장하성펀드'다. 라자드자산운용이 2006년 출시한 '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는 당시 소액주주운동을 했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가 투자 고문을 맡으며 장하성펀드로 불렸다.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의 지분을 인수, 주주권을 행사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 목표였다. 태광산업 대한화섬 크라운제과 등 이 펀드에 편입된 종목들은 화제가 되며 주가 급등을 연출했다.

태광산업 대표이사 해임 소송, 한솔제지 사외이사 선임 등 적극적인 행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잇따른 주주행동의 실패와 부진한 수익률 때문에 2012년 청산했다.

주주권 행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 부족, 작은 펀드 규모 등이 부진의 원인이었다는 평가다.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 대표를 역임한 동일권 모루자산운용 대표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고, 제도 등 보호 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빼앗긴 주주의 이익을 회복시키기가 굉장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운용사 KCGI의 강성부 대표는 "장하성펀드는 규모가 작아 대상 기업의 지분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다"며 "또 소액주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환경이 아니라 다른 기관투자자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현재의 분위기는 장하성펀드 당시보다 많이 좋아졌다. '거수기'란 비난을 받았던 기관투자자들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2017년 이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내 9개 자산운용사의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내역을 보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전에 비해 찬성과 중립 의견이 줄었다. 반대 의견을 표명한 비율은 4.4%에서 9.8%로 증가했다.

여기에 지난 7월말 기준 643조원의 자금을 가진 국민연금이 가세하면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위탁운용사 선정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곳에 가점을 부여할 예정이다. 'VIP'인 국민연금을 유치하기 위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는 운용사가 늘어날 것이다.

또 내년에는 국민연금에 이어 공무원연금과 우정사업본부, 사학연금 등 국내 4대 연기금이 모두 스튜어드십코드에 동참하게 된다.

◆스튜어드십코드 활성화…한국 증시, 재평가 기대

스튜어드십 코드의 활성화로 시장에서 기대하는 것은 한국 증시의 재평가다. 한국 증시는 기업들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낮은 배당성향(순이익 중 배당비율) 등으로 다른 나라의 증시에 비해 할인받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재벌 중심의 지배구조로 기업의 성장이 주주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신뢰가 약하다는 것이다.

최초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영국은 2010년 이후 배당금 규모와 배당성향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기관이 본격적으로 증가한 2012년 이후에는 FTSE지수도 상승했다. 일본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2014년부터 니께이225지수의 상승추세가 가속화됐다. 배당금도 2014년을 기준으로 증가폭이 확대됐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가 중 지난해 배당성향이 가장 높았던 곳은 호주로 76%를 기록했다. 영국과 일본은 각각 61%와 28%였으며, 한국은 18%에 그쳤다.

김영환 KB증권 연구원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한국 증시의 만성적인 할인이 해소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며 "당장 대단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주목해야 할 변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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