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야기 (29)] 강신재 《젊은 느티나무》

입력 2018-10-08 09:00
손은주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국문학 산책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한 시절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젊은 느티나무」의 첫 문장이다. 어떤 문학 작품은 하나의 문장만으로도 기억되며 생명력을 얻는다. 이는 독자에게 각인된 빼어난 문장에 대한 상찬일 수도 있고 문장이 주제 의식을 앞선다는 혹평일 수도 있다. 이 단편은 어느 쪽일까?

‘나’는 숙희라는 이름의 여고생. 시골 외할아버지 집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오래전 아버지를 여읜 엄마는 아직 젊고 아름답다. 어느 날 므슈 리가 외할아버지 과수원으로 찾아오고 엄마는 그와 결혼한다. ‘나’ 역시 서울 S촌 므슈 리의 집에 살게 된다. ‘나’는 그림자 같은 생활을 하던 엄마가 행복해진 것 같아서 흡족하다. 대범한 성격의 호인인 새아버지도 좋고 S촌의 숲속 환경도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벽돌집도 기분에 맞다. 그러나 이곳에는 뜻하지 않은 괴로움이 있다. 괴로움의 진원은 므슈 리의 아들 현규다. 현규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수재이며 ‘나’의 학교 테니스 코치보다 운동 실력이 뛰어나며 아폴로의 그것처럼 모양 좋은 머리통을 가졌다. ‘나’는 어느새 현규를 사랑하게 됐고 그것은 그를 오빠라고 부를 수 없게 하는 감정이다. 그를 오빠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지만 그것은 부조리의 상징 같은 어휘다. 현규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에는 죄의식이 없지만 그것은 엄마와 므슈 리를 배반하는 것이고 이는 곧 네 사람 전부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파멸이라는 말의 캄캄하고 무서운 음향 앞에서 떤다.


이 단편을 처음 안 것은 여중 시절 벗을 통해서다. 벗은 이 소설을 열성적으로 사랑해 줄거리와 배경과 인물의 면면과 갈등관계를 거듭 읊어댔다. 상그레하게 들떠 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학교 교육 외에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창구가 TV의 해외 명화와 문예반 활동 정도가 고작이던 그 시절, 이 소설은 사춘기 소녀가 동경할 만한 요소가 한데 모인 종합선물세트 아니었을까? 남자 주인공은 순정만화에서 걸어나온 것 같이 수려하고 명민한 귀공자이며 S촌이라는 주택가의 풍경은 이국적이며 므슈 리와 엄마는 물론 외조부모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고방식이 세련됐고 언행 역시 우아하다. 그리고 풍요롭기 짝이 없는 생활상. 1인당 국민소득이 79달러인 시절에 냉장고, 크래커, 치즈, 코카콜라, 테니스, 테라스, 자가용으로 통학하는 대학생 등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니. 1960년대 초반 ‘뽀오얗게 얼음이 내뿜은 코카콜라와 크래커, 치즈 따위를 쟁반에 집어 얹는’ 일상을 산 여고생이 얼마나 될까.

이 작품이 『사상계』에 발표된 것이 1960년이니 6·25전쟁 발발 10년 뒤다. 그 무렵 발표된 소설 하면 ‘오발탄’(이범선) ‘사수’(전광용) ‘모반’(오상원) 쇼리킴’(송병수) ‘잉여인간’(손창섭) 등이 얼른 떠오른다. 이른바 전후문학이라 일컬어지는 이 작품들은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고발하거나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과 세계의 대결, 삶의 이정을 상실한 인간의 비극 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젊음이 상쾌하고 발랄하게 묘사되는 문학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라고 청춘이 어둡기만 했을 리 없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오직 그것이 청춘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 엄혹한 시대라고 해서 청춘들이 풋풋하고 투명한 사랑을 가지지 말란 법은 없다.

법적 남매의 사랑이라는 구도는 통속적이고 이야기 전개는 다소 신파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충분히 아름답다. 작가는 사랑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소녀의 심리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고 발랄하고 재치 있는 문체는 사회적 금기인 애정의 모럴을 무난히 소화해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두 청춘은 물론 고뇌하지만 심리적 갈등을 건강하게 직시한다. 현규는 스스로의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골 할머니 집으로 도망간 ‘나’를 찾아와서 우리의 감정은 진실이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만나기 위해 헤어지는 것이라며 미래를 응시할 힘을 준다. 그리하여 마지막 문장.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 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전후시대 젊은이들을 위로하던 수채화같은 청춘 송가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소녀의 독백은 충분히 사랑스럽다. 이 마지막 문장은 다시 첫 문장을 환기시킨다. 욕실에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현규에게서 발산되는 비누 냄새는 ‘나’의 가슴속으로 퍼져나가는 저릿한 향기이기도 하다. 이 산뜻한 향기는 작품의 시작이자 끝이며 작품의 몸통 역시 그 향기에 집약되며 한 그루 ‘젊은 느티나무’라는 표제를 탄생시킨다. 암울한 전후시대 젊은이들을 위로하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청춘 송가. 그것이 지금까지도 이 소설의 첫 문장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