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포용국가'는 위험하다

입력 2018-10-07 17:49
"복지를 확대해
'국민행복' 책임지겠다는 정부
시민의 책임윤리 훼손하고
사회발전 덕목도 위축될 뿐

정부지출 줄이고 규제 풀어
경제적 자유 보호하는 게 최선"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 자유철학아카데미 원장 >


문재인 정부는 집권 2기에 들어서면서 장애·아동·노인수당 확대와 사회 안전망 확충 등 ‘포용국가’ 구상을 제시했다. 복지 확대를 통해 국민행복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포용국가’야말로 이른바 ‘촛불정신’을 구현하는 나라다운 나라라는 이유에서다.

흥미로운 건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온정주의’ 논리다. 시민들은 무지와 편견 때문에 건강·노후 대책 등을 세울 수 없고 그래서 국가가 개입해 그들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손을 놓고 있으면 국민은 일자리·소득 문제, 자녀의 보육·교육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의 바탕에는 통치자는 시민들에게 좋은 삶, 일자리 마련, 소득 증대 방식, 노후·건강 대비책을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엘리트주의가 깔려 있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을 책임질 이유는 온정주의만이 아니다. 시민 중에는 국가에 의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린애가 부모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태도가 ‘어버이주의’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애환을 어루만져주는 정부를 좋아한다. 국가가 어린애를 키워주고, 학교에 보내주고, 일자리도 만들어주고, 소득도 늘려주고, 병도 치료해주고, 늙으면 보살펴주는 등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만 하면 개인의 자유는 희생해도 좋다고 한다. 자유를 국가에 반납하는 시민들의 태도가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질 근거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민들은 자신들이 인기영합적 좌파정치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모른다. 자유를 포기한 결과는 얼굴 없는 국가권력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 조직이다. 자유를 국가에 반납하면 기다리는 건 회피할 수 없는 국가권력이다. 최저임금제를 통한 국가권력의 무자비한 횡포가 시민들이 자유를 포기한 대가가 아니던가! 그게 자유를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국가가 시민들의 삶을 책임지려면 돈이 필요하다. 국가는 불가피하게 ‘강제로’, 즉 조세의 형태로 누군가의 부(富)를 보상 없이 수용해야 한다. 이는 국가가 특정 계층의 행복 증진을 위해서 다른 계층의 재산을 빼앗는다는 뜻이다. 편애하는 인간 그룹을 위해 다른 그룹에서 빼앗은 돈으로 선심을 쓰는 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걸 핵심으로 하는 유서 깊은 법치(法治)에도 어긋날뿐더러 누구도 타인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이마누엘 칸트의 유명한 정언명령(定言命令)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인간의 존엄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기업가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는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자유와 인권의 침해를, 그래서 필연적으로 폭정을 부른다. 개인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기 때문에 자신과 가족에 대한 책임윤리도 훼손된다. 독립심을 갉아먹고 복지 의존심만 강화하고 절약, 인내심 등 개인과 사회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덕목도 위축시킨다. 육아, 자녀 교육, 부모 봉양, 노년의 삶에 대한 계획 등 시장을 통해서 가족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국가가 해결하기 때문에 가족의 파괴를 초래하는 것도 필연이다.

국가가 국민행복을 책임지겠다는 인식에는 정부는 국민행복에 헌신하는 선량한 존재라는 위선이 깔려 있다. 권력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좌파정권이다. 좌파정권이 자본가나 기업인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건 전혀 근거 없는 말이다. 그런 인식에는 좌파정권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전부 가지고 있다는 지적 허세도 깔려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보다 현명하고 도덕적인 척하다가 최근 망한 나라가 좌파들이 흠모하던 베네수엘라 아니던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권력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는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권력 제한이 없는 국가에서 민주적 독재와 빈곤, 실업, 양극화는 필연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복지를 시장의 자생적 힘에 의존하도록 규제를 풀고 정부 지출을 줄여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면서 무의탁 노인, 결손가정, 당장 먹을 게 없는 어려운 가정의 삶만을 책임지는 자유국가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