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프런티어
이문수 이노테라피 대표 인터뷰
우연히 발견한 창업 아이디어
'홍합 접착원리' 연구 접한 뒤
의료분야에 접목해 지혈제 개발
연내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추진
뚝심으로 판로 개척
외국산이 장악한 국내 시장
임상데이터 쌓으며 신뢰 얻어
올 상반기 빅5 병원에 공급
6조 규모 세계 시장 공략
후속작 '이노씰플러스'로
美·日 프리미엄 지혈제와 경쟁
"2025년 매출 1000억 넘길 것"
[ 박영태 기자 ] “기존 의료기술이나 시스템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기술벤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게 목표입니다.”
회사 비전을 묻는 질문에 의료기기업체 이노테라피의 이문수 대표(44)가 밝힌 포부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글로벌 지혈제 강자가 이 대표가 꿈꾸는 종착역이 아니었다. 지혈제는 단지 출발점일 뿐이었다. 그는 “인체 장기의 천공을 막는 기술, 몸속의 단백질과 빠르게 접착하는 약물 전달 기술 등으로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201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여전히 도전 정신이 충만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분위기가 물씬 났다. 최근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를 통과하고 상장 심사 절차에 들어갔다. 서울 문래동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사업 비전과 계획 등을 들었다.
홍합에서 얻은 창업 아이디어
이 대표는 KAIST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삼성종합기술원과 CJ제일제당 등을 거쳤다. 2003년 입사한 삼성종합기술원에서는 신수종사업발굴 태스크포스팀에 소속돼 삼성그룹의 바이오·제약사업 그림을 그렸다. 3년 뒤 CJ제일제당으로 옮겨 제약사업 전략 업무를 했다.
창업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대학 동기인 이해신 KAIST 교수의 연구 결과를 접하면서다. 홍합이 물속에서도 바위에 잘 달라붙는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밝혀낸 이 교수는 당시 한창 뜨고 있던 과학자였다. 8년 가까이 신사업 발굴 업무 등을 해온 이 대표는 사업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는 “당시 제약산업에 발을 담그고 있었기에 메디컬 분야에 접목하면 되겠다 싶어 이 교수와 손잡고 창업했다”고 했다.
초기 사업 아이템은 물에서도 잘 붙는 끈적거리는 접착제였다. 이 대표는 “이 교수가 발견한 천연합성 고분자 접착작용기는 일종의 표면처리 기술이어서 응용분야가 많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개발 과정에서 피와 잘 붙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지혈제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이노테라피는 코오롱과 함께 씨에이텍이라는 합작사도 세웠다. 산업재 용도의 접착제 개발을 위해서다. 이 대표는 “보유한 접착기술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어렵게 건넌 데스밸리
막상 창업을 했지만 회사 운영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벤처캐피털조차 눈길을 주지 않았다. 신약이나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바이오벤처에는 돈이 몰렸지만 국내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치료재료 개발에 뛰어든 이노테라피를 눈여겨보는 곳은 없었다. 이 대표는 “정부 연구과제 등을 수주하고 개인 돈까지 써가며 어렵사리 회사를 운영했다”고 했다.
반전이 시작된 것은 창업 2년 만이었다. 한 벤처캐피털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은 게 계기였다. 이 대표는 “지혈제 콘셉트를 막 잡고 있던 때였다”며 “재료공학을 전공한 벤처캐피털리스트가 기술 가능성을 알아봤다”고 했다. 자금에 숨통이 트인 이노테라피는 제품화와 생산공정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시제품을 생산할 정도로 역량이 쌓이자 투자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20억원을 추가로 투자받았다.
2015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첫 제품인 지혈패드 ‘이노씰’의 판매허가를 받으면서 시장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문제는 판로 개척이었다. 대부분 외국산 의료기자재를 쓰는 국내 병원들은 국산 제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심지어 싸구려 복제품 취급을 했다.
이노테라피는 남다른 전략을 썼다. 학술임상 등을 통해 임상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하면서 의사들의 신뢰를 얻는 데 주력했다. 지난해에는 보건복지부의 국산의료기기지원사업에 선정돼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에서 200명을 대상으로 학술임상을 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올 상반기에 국내 빅5 병원을 모두 공급처로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지혈제 3종 브랜드로 차별화
이노테라피의 지혈제 라인업은 모두 3종이다. 혈관 수술 등에 사용하는 지혈패드인 이노씰, 간담췌 등 복강 수술 때 쓰는 생분해성 지혈제인 이노씰플러스, 위 장 등 소화기 내시경 시술 때 쓰는 지혈제인 엔도씰 등이다. 이노씰플러스와 엔도씰은 확증임상이 마무리 단계다.
이들 제품은 홍합이 물속에서도 바위 등에 잘 달라붙는 원리를 모방한 기술이 핵심이다. 카테콜아민이라는 고분자 단백질이 작동해 피의 물성을 바꾸는 방식으로 출혈을 멈추게 한다. 이 대표는 “치료 분야(적응증)에 따라 성분 등을 다르게 하고 제품 브랜드도 따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노테라피는 6조원에 이르는 세계 지혈제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50개 병원에 공급 중인 이노씰은 미국 일본에도 진출했다. 2016년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고 캘리포니아 서던캘리포니아대병원 등 15개 현지 병원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지난 6월에는 일본에서도 판매허가를 따냈다. 남미 중동 등에서는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이 대표는 “지혈패드 시장은 가격이 싼 데다 경쟁도 치열해 세계 시장을 뚫기가 녹록지 않다”며 “과학적 임상 데이터 등을 통해 이노씰의 시장 기반을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 진검승부
이노테라피는 이노씰의 후속작인 이노씰플러스에 승부를 걸고 있다. 미국 박스터, 일본 다케다 등이 독과점하고 있는 프리미엄 지혈제 시장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사람의 혈액에서 추출한 피브린 글루 성분의 기존 지혈제는 출혈량이 많거나 혈우병 등 혈액응고장애 환자에게는 효과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며 “아스피린을 복용해 피가 묽은 환자는 물론 교통사고 등으로 대량 출혈이 생긴 환자에게도 제대로 작동하는 이노씰플러스의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했다.
이노테라피는 환자 96명을 대상으로 한 다케다의 타코실과 이노씰플러스의 비교확증임상을 최근 마무리했다. 이 대표는 “이노씰플러스의 성능을 타코실과 비교하는 임상에서 동등한 성능과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내년 초 한국과 유럽에 허가신청을 동시에 낼 계획이다. 이 대표는 “국내 임상이었지만 처음부터 유럽 CE인증을 염두에 두고 임상 설계를 했다”며 “이르면 내년에 국내와 유럽에 이노씰플러스를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지 임상을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미국 중국 일본에서는 현지 파트너와 손잡고 임상을 할 예정이다. 현재 해외 임상을 진행할 파트너를 물색 중이다. 이 대표는 “이노씰플러스는 피와 만나면 0.5초 만에 막을 만드는 특성 때문에 활용범위가 넓다”며 “앞으로 여러 적응증으로 임상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엔도씰도 환자 76명을 대상으로 한 확증임상을 마무리했다. 기존 지혈제가 넘보지 못한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위 내시경 시술의 경우 산도가 높고 위액 때문에 미끄러워 마땅한 지혈제가 없다. 이 때문에 시술 부위를 플라즈마로 지지거나 클립으로 묶는 방식을 쓴다.
“2025년 매출 1000억원 목표”
이노테라피의 유일한 매출원인 이노씰은 2016년 1억원, 지난해 2억원어치가 팔렸다. 하지만 올 들어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판로가 열리면서다. 올해 매출 목표는 7억원이다. 최근 일본 수출물량이 처음 선적되는 등 수출에도 탄력이 붙고 있다. 회사 측은 이노씰플러스 출시가 본격적인 도약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노씰플러스가 국내는 물론 유럽 미국 등 주요국에 출시되는 2025년에는 회사 전체 매출이 1000억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노테라피는 생산능력도 확보했다. 서울과 대전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50만 개다. 그는 “향후 수년간은 기존 생산설비로 물량을 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피 안나오는 주삿바늘도 개발하고 있다. 기존 황반변성을 치료하는 기존 주사제는 주사액이 유출되거나 감염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이 회사는 지혈제 기술을 활용해 이런 부작용을 없앴다. 미국 FDA 허가 절차를 준비 중이다. 중국 현지 기업과도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이노테라피는 연내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공모 자금은 이노씰플러스 글로벌 임상 등에 쓸 계획이다. 이 대표는 “첫 제품인 이노씰의 상업화를 통해 직원 상당수가 개발과 허가, 임상, 판매 등 제품 전 주기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며 “앞으로 여러 사업을 펼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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