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서울 택시 기본요금 1000원 올린다는데…

입력 2018-10-03 17:52
수정 2018-10-04 09:49
서비스 질 높이고 규제 완화로 시장파이 키워야

불친절 대명사 된 택시
갈길 급한 여성 승객에게
"드라이브나 좀 하자" 희롱
상반기 서울 택시 민원 1만여건

감차 등 구조개혁 우선돼야
은퇴자들 몰리며 시장 포화
개인택시 번호판 가격만 올라
올들어 9000만~1억원에 거래

요금 올려도 택시 매출 제자리
해외선 '공유 택시'로 시장 키워


[ 이수빈/임락근/박진우 기자 ] 서울시가 지난 2일 내년부터 택시 기본요금을 현재 3000원에서 4000원으로 1000원 인상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할증시간을 늘리고, 요금체계도 개편해 대략 30% 인상 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택시 기사 처우를 개선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여 택시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손님이 줄어든다며 요금 인상에 반발하는 택시 기사도 적지 않다. 구조적 개혁과 서비스 질 개선으로 시장을 키우지 못하면 택시 기사의 열악한 처우와 요금 인상 악순환만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전한 택시 불친절

직장인 조모씨(26)는 최근 회사에 늦을까봐 택시를 탔다가 봉변을 당했다. 택시 기사는 대뜸 “드라이브 시켜주겠다”며 우회로인 북악스카이웨이 쪽으로 갔다. 조씨가 “빨리 가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사는 오히려 “남자친구하고는 드라이브하면서 나와는 하기 싫으냐”고 대꾸했다. 명백한 희롱이었지만 바쁜 출근길에 마땅한 대응책도 없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

택시 기사들의 노동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면서 불친절 문제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접수된 택시불편신고 민원은 1만549건에 달했다. ‘불친절’이 3648건(34.6%)으로 가장 많았고 ‘승차거부’ 3046건(28.8%), ‘부당요금’ 2555건(24.2%)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택시요금을 올리는 대신 승차거부를 1회만 하더라도 운행을 1주일 중지시키는 서비스 개선책을 내놨다. 이달 공청회를 통해 안을 확정한 뒤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요금 인상만으론 처우 개선 안 돼

그러나 택시 기사들조차 서울시 요금 인상안에 회의적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서울 시내 택시 기사 20명과 인터뷰한 결과 요금 인상안을 찬성한 기사는 단 2명에 불과했다. 손님이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개인택시 기사 김규준 씨는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면 손님이 택시 타기를 꺼린다”며 “2013년 택시 기본요금을 2400원에서 3000원으로 올린 뒤에도 수입이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8조5462억원이었던 전국 택시 매출은 2014년 8조2665억원으로 뒷걸음질했다. 최신 통계인 2016년 택시 매출도 8조2691억원으로 정체 상태였다. 결국 택시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고 있어 요금 인상이 택시 기사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택시 기사들은 요금 인상보다는 구조적 모순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 택시업계에서는 공급이 넘쳐나는데도 고령 은퇴자들이 몰려들면서 개인택시 면허(번호판) 가격이 치솟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7년 전 4000만원이던 서울 개인택시 번호판 가격은 현재 9000만~1억원에 달한다. 개인택시 기사인 조원우 씨는 “은퇴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으니 번호판을 사서 택시나 해보자는 이들이 많다”며 “기사들은 고령화되고 승객들도 택시를 외면하다 보니 수입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감차 등 구조 개혁이 필요하지만 기득권의 저항으로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전국 택시는 25만5131대로, 적정 대수를 22.4% 초과했다. 올 4월 기준 택시도 25만2737대로, 2015년과 큰 차이가 없다. 정부의 감차 사업으로 지난 3년간 줄어든 택시는 고작 1922대에 불과했다.

서비스 개선은 수년째 ‘공염불’

서울시는 이번 요금 인상안을 마련하면서 승차거부 등 불친절 사례가 한 번만 적발돼도 최소 1주일간 운행을 중지시키는 안을 국토부에 건의하기로 했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정부가 2015년 ‘승차거부 삼진아웃제’를 도입해 △1차 적발 시 경고 처분 △2차 때 30일간 면허정지 △3차 때 면허취소 처분을 내리기로 했지만 실제 퇴출 사례는 극소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은 공유차 서비스를 도입해 서비스 질을 높이고 시장 파이를 키워 승객과 기사가 윈윈하는 사례가 많다. 인도네시아 제1의 차량공유 업체인 고젝은 90만 명의 택시 기사들과 손잡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젝에 가입하기 전 택시 기사 수입은 월평균 330만루피아(약 25만원)였지만 더 많은 승객을 태우게 되면서 평균 420만루피아로 증가했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택시가 아닌 승객 수송이라는 업의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며 “규제를 풀고 차량공유 신사업에 문을 연 해외에선 기사 수입도 늘고 시장도 커졌다”고 말했다.

이수빈/임락근/박진우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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