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공직자 재취업 심사, 힘 센 기재부·총리실은 '프리패스'

입력 2018-10-01 17:39
2014~2018년 퇴직 공직자 재취업 심사결과 조사해보니…

재취업 심사 통과율 83%

부처 예산권 쥐고 있는 기재부
심사 소관부처 인사처는 100%
행안부 95%, 산업·복지부 90%
실세 기관들 대부분 '평균 이상'
고용·환경부 70%대 '평균 이하'

심사 안받고 임의 재취업 급증
2014년 40명→2017년 229명
불투명한 심사 과정도 문제


[ 백승현 기자 ] 퇴직 공직자들의 재취업 심사 통과율이 83%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취업 심사는 공무원이 퇴직하고 민간 기업으로 옮길 때 정부가 이에 대한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공무원 여섯 명 중 한 명가량은 심사 과정에서 재취업이 차단된 셈이다. 하지만 부처별로 보면, 부처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심사소관 부처인 인사혁신처는 퇴직공직자가 전원 재취업 심사를 통과한 반면 고용노동부, 환경부 출신들은 통과율이 80%에 못 미쳤다. ‘민관유착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퇴직 공직자 재취업 심사가 전문성보다는 부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퇴직 공직자 6명 중 1명만 재취업 차단

인사처가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2014~2018년 8월 퇴직공직자 재취업 심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 기간에 총 3025건을 심사해 2503건(83%)의 취업을 허가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등록 의무자(통상 4급 이상 공무원)는 퇴직 전 5년간 일했던 부서나 기관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곳에 3년간(2015년 3월 이전 퇴직자는 2년) 취업할 수 없다. 다만 공직자윤리위의 사전 심사를 통해 취업가능·승인 결정을 받으면 취업할 수 있다. 퇴직한 공무원이 정부에 로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다.


행정부 18개 부처 가운데 통과율이 가장 높은 곳은 기재부와 인사처였다. 기재부는 20명이 재취업 심사를 신청해 전원 통과했다. 공직자윤리위를 담당하고 있는 인사처도 100% 통과했다. 이 밖에 정부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안전부(95%)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90%), 보건복지부·국방부(90%) 등 이른바 ‘힘이 센’ 기관의 재취업률은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고용부(78%), 환경부(78%), 해양수산부(70%) 등은 평균 이하였다.

부속 정부기관도 다르지 않았다. 국무총리비서실(100%), 감사원(98%), 국가정보원(98%), 대통령경호처(94%), 금융위원회(94%), 관세청(94%), 검찰청(93%) 등 ‘실세 기관’의 재취업률이 높았다.

부처별로 통과율에 차이가 크다 보니 심사 통과 여부가 전문성보다는 부처 영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힘이 없는 부처 출신들을 더 많이 떨어뜨려 통과율을 일정 수준으로 맞추려는 것 같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임의 재취업 102명 적발

공직자윤리위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재취업했다가 적발된 퇴직 공직자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14년 40명이던 임의 재취업자는 이듬해 155명, 2017년 229명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102명이 적발됐다.

임의 재취업이 매년 증가하는 것은 적발돼도 처벌이 관대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2014년 이후 적발된 750명 중 과태료 부과 요청이 이뤄진 경우는 268명(35.7%)에 불과했다. 공직자윤리위는 적발자 가운데 343명(45.7%)은 생계형 취업이어서, 105명(14%)은 자진 퇴직했다는 이유로, 31명(4.1%)은 국가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과태료를 면제해줬다.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심사 신청 방법은 ‘취업제한여부 확인 요청’과 ‘취업승인 신청’ 두 가지다. 취업제한여부 확인 요청은 퇴직 전 소속 부서와 취업제한기관 간의 업무 관련성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 취업승인 신청은 업무 관련성은 있지만 취업해야 할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이뤄진다.

문제는 심사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첫 심사 때 취업제한여부 확인 요청을 했다가 ‘낙방’한 뒤 재차 취업승인 신청을 해 통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업무 연관성이 있더라도 취업이 승인되는 ‘특별한 사유’의 모호한 기준도 논란거리다. 공직자윤리법은 △국가경쟁력 강화와 공공의 이익 △경영 개선 △취업 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은 경우 등을 특별한 사유로 인정한다.

불투명한 심사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공직자윤리위는 매월 당락 결과만 공개할 뿐 그 사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고무줄 기준’ ‘깜깜이 심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최근 재취업 심사에서 탈락한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위원회에서 모두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1차 필터링을 하는 실무선에서 대부분 당락이 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심사 대상자로선 탈락하더라도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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