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SW 등 공공분야 사업 입찰가격 기준 현실화해야

입력 2018-10-01 17:21
출혈경쟁 여전한 '협상에 의한 계약'
최저가 낙찰제 평균 가격보다 낮아
입찰가격 기준을 80%로 높여야

김용재 <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영학 >


일반인에게는 낯설겠지만 ‘협상에 의한 계약’이라는 입찰 방법이 있다. 정부·지방자치단체 등의 발주자가 사업자 제안을 받아 협상을 통해 계약하는 방식이다. 엔지니어링·소프트웨어(SW)·전시문화 등 기술성, 전문성, 창의성이 요구되는 사업 입찰에 전반적으로 이용한다.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면서 최저 입찰 가격에 따른 미래 유망 산업의 제 살 깎기 경쟁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사업자들은 환호했다. 최소한 공공 분야에서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출혈경쟁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도 도입 후 성적표는 어떨까.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기술은 등한시되고 출혈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한 공공기관에서 진행한 ‘백업 시스템 구축사업’에서 기술 점수가 높았던 A사는 낮은 가격을 써낸 B사에 일감을 내줬다. 기술 점수는 앞섰지만 경쟁이 불가능할 정도로 낮은 가격을 써낸 B사보다 최종 점수가 낮았다.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을 따랐지만 여전히 기술보다는 가격이 승부를 좌우했다.

극적인 뒤집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평가 방법’에 있다. 보통 사업자 간 기술평가 점수의 차이는 1~2점 정도로 크지 않다. 반면 가격 점수는 낙찰 하한율인 예정 가격의 60%를 써낼 때 최대 6점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기술 점수에서는 우위였어도 상대가 60% 수준의 입찰 가격을 써낼 경우 종합 평가에서 쉽게 뒤집힌다. 사업자들이 기술 경쟁보다 가격 경쟁에 몰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한국에서 협상에 의한 계약 수주에 성공한 사업자들의 제시 금액은 대부분 발주자가 처음 제시한 금액의 60%에 가깝다. 2016년 서울지방항공청의 비상용 통합접근관제시스템 전용통신망 구축사업, 2018년 인도네시아 카리안-세르퐁 도수로사업 엔지니어링사업 등의 낙찰률은 딱 60%였다. 재미있는 점은 2016년 기준으로 ‘최저가 낙찰제’의 평균 낙찰률은 예정 가격의 72.2%였다는 점이다. 최저가 낙찰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등장한 협상에 의한 계약의 낙찰 하한율이 오히려 최저가 낙찰제의 평균 낙찰률보다 더 낮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낙찰률이 떨어질수록 사업자 수익률은 악화된다. 이들 기업이 투자할 미래의 기술 발전 속도도 비례해서 떨어지기 마련이다. 지난 5월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정책연구실에서 작성한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사업 지원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2014~2017년 컨설팅 계약 낙찰률은 96.9%였다. 낙찰률 차이만큼 미래 기술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또 기술력이 뒤처진 국가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정부도 나름대로 고민은 많았던 것 같다. 기획재정부는 2014년 보호 육성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SW산업에 대해서는 낙찰 하한율을 60%에서 80%로 올려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보통신, 엔지니어링, 전시문화,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사업 등은 낙찰 하한율 60%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협상에 의한 계약 입찰 자격자 중 SW산업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산업별로 기준을 다르게 하는 것은 정부가 육성 사업의 적자와 서자를 구분하는 것과 같다.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은 ‘기술력 중심의 평가’를 노렸지만 실제는 낙찰가가 너무 낮게 형성돼 당초 취지가 퇴색했다. 원래 제도의 취지를 살려 모든 협상에 의한 계약 입찰 가격 기준을 80%로 맞추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