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한경닷컴 기획연재 (1)
박종민 <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이사 >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가 ‘1:1 전자 화폐 시스템(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분산화된 가상화폐(암호화폐), 즉 비트코인의 개념을 소개했다. 이후 10여년 동안 암호화폐 관련 생태계는 규모 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속성 면에서도 새로운 전자적 거래수단 차원을 넘어 많은 산업과 사회 자체를 격변시킬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급등과 급락을 오가는 암호화폐 가격의 변동성, 거래소에 대한 빈번한 해킹, 코인 투자를 빙자한 사기의 급증, 정부의 모호한 태도 혹은 규제 강화 등의 휘발성 높은 뉴스로 인해 암호화폐는 그저 투기 수단으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본질을 놓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많은 새로운 암호화폐들의 등장 배경, 암호화폐 공개(ICO)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더리움의 특성, 토큰과 코인의 구분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비트코인 사용 증가에 따라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10분당 2000건의 처리용량으로는 전세계적 거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작년 5월에는 거래 체결에 하루 이상 소요되기도 했다. 게다가 거래 수수료를 비트코인으로 지불해야 하는 구조 탓에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고 변동성이 심해지면서 거래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유명무실해졌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스템 참여자들 합의 하에 기능 개선, 오류 정정, 문제점 보완 등이 이뤄져왔다. 신규 규칙과 기술의 적용방식에 따라 소프트 포크(soft fork)와 하드 포크(hard fork)로 나뉜다.
비트코인의 포크를 통한 점진적 개선과 별개의 시도도 존재한다. 처음부터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비트코인의 약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능을 제공해 시장 주도권을 노리는 대안적 코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을 통틀어 알트코인(altcoin)이라 부른다. 그중에서도 ‘어플리케이션 플랫폼으로서의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블록체인 2.0을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이더리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러시아 프로그래머 비탈릭 부테린이 2015년 7월 개발한 이더리움은 작동 중단, 사기, 제3자의 통제 혹은 간섭 없이 실행되는 스마트 계약과 분산형 앱(dApps·Distributed Applications)을 가능케 하는 분산화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이더리움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는 데이터 저장과 전달을 비롯해 블록체인에서 동작하는 앱 제작과 실행까지 가능한 종합 플랫폼이란 점이다. 프로그램의 실질적 실행은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참여한 컴퓨터들의 연산 능력에 의존한다. 이론상으로는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부터 오버워치 같은 게임까지 모든 프로그램의 구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느린 처리 속도로 인해 아직은 이렇다 할 킬러 앱이 없다. dApps 생태계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기술 개선 상황을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한다.
이더리움 이전의 대부분 암호화폐는 자체 블록체인을 보유했다. 이러한 암호화폐를 일반적으로 코인(coin)이라 칭한다. 블록체인 참가자의 동기 부여와 가치 교환 외의 기능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더리움 이후에는 자체 블록체인 없이 이더리움 같은 기존 암호화폐 플랫폼에 기반한 암호화폐들이 대거 등장했다. 상당한 기술적 능력과 자원이 필요한 자체 블록체인 개발 없이도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 기능을 이용해 프로토콜 위에서 작동하는 암호화폐 생성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체 블록체인 없이 기존 블록체인 플랫폼 위에서 작동하는 암호화폐를 토큰(token)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토큰은 dApp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용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오늘날 시장의 대부분 ICO는 이더리움 기반, ERC-20 호환 표준을 따르는 토큰 판매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많은 난제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중개인 제거를 통한 비용 절감부터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수립까지 산업과 경제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등장한 모든 신기술이 그러했듯 과장은 걷어내고 옥석을 가려낼 필요가 있다. 2018년 9월 기준으로 약 2000개에 달하는 모든 암호화폐가 가치를 가질 리 없다. 업체들이 제시하는 장밋빛 약속 또한 모두 구현될 수는 없다. 아직 관련 산업이 초기인 만큼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관련 기본 지식을 이해하고 업계 동향을 계속 주시해야 요란한 과장과 선전 속에서 보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딜로이트와 한경닷컴은 블록체인, 암호화폐, ICO의 실체를 파악하고 한국 정부 및 사회가 보다 합리적인 법규와 정책을 확립하는 데 일조하고자 기고를 총 10회에 걸쳐 기획 연재합니다. 딜로이트는 ICO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하는 만큼 한경닷컴 기고문에서 최대한 의견 표명을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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