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논설위원
[ 백광엽 기자 ]
‘민족’처럼 심장을 파고드는 말도 드물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한국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몇 해 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 사건’에서 보듯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종종 집단편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저항하기 힘든 권위로 포장됐지만 ‘민족’이란 단어의 등장은 그리 오래지 않다. 실체도 불분명한 개념이다. 조선 역사와 기록에서 민족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말을 찾기 힘들다.
한국에서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란 혈통주의로 통상 이해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조상’으로 추앙받은 대상은 단군이 아니라, 중국 고대 상(商)나라에서 건너온 ‘기자(箕子)’였다. 이런 인식은 ‘소중화(小中華)’라는 사대주의로 흘렀고, 단군은 조선왕조 500년 내내 잊혀진 인물이었다.
유럽에선 민족이 혈통에서 유래됐다는 생각이 잘 안 통한다. 프랑스는 켈트족이기도, 이베리아족이기도, 게르만족이기도 하다. 민족이 ‘집단의 심리상태’이며 ‘일종의 무드일 뿐’이라고 정의되는 배경이다.
우리가 민족을 의식하고 담론을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조선 왕조가 붕괴 위기에 처했을 때부터다. 최남선이 ‘한국 민족주의’를 주창하면서 비로소 그 모습을 구체화했다. 식민지의 고초를 겪으면서 단군은 다시 민족 조상으로 모셔졌고, 해방 후 개천절이 제정되며 단군신화가 공식화됐다.
한국 사례에서도 보듯 민족에 대한 기억은 시대마다 다르다. 민족주의의 기원을 추적한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정치적으로 위력이 있지만, 철학적으론 빈곤하고 일관성마저 결여하고 있다”고 진단한 그대로다.
‘민족 과잉’은 경계의 대상이다. 특히 정치에 악용되면 ‘피를 부른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아리안족이 가장 우수하다고 믿은 나치 치하의 독일인, ‘신의 민족’이라며 침략전쟁을 감행한 천황제하의 일본인은 반면교사다. ‘중국몽’을 앞세운 시진핑의 중국에 ‘중화주의’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2박3일 방북 행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게 민족에 대한 강조다. ‘평양 공동선언’에서 “민족자주, 민족자결 원칙을 재확인”한다고 했고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도 강조했다. 능라도 경기장의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행한 7분간의 연설에서도 민족은 10번이나 언급됐다.
물론 북핵 해결 의지와 통일 염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민족주의는 21세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북에서 ‘우리 민족끼리’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사회주의에선 미추(美醜)와 선악의 유일한 판단기준이 ‘계급이익’이기 때문이다. 한국 민족주의의 시초격인 최남선은 말년에 와서야 “지나고보니 민족이란 집단적 대립물이 만들어 놓은 함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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