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uccess Story
김낙훈의 스페셜 인터뷰
"첨단기술의 산실 아헨… 한국과 스마트공장·전기車 등 기술협업 기대"
[ 김낙훈 기자 ]
독일 중서부에 있는 아헨은 카를 대제(샤를마뉴)가 프랑크 왕국을 다스리던 중심지다. 그 뒤 출현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주로 이곳에서 대관식을 했다. 지금은 유럽 최대 공과대학인 아헨공대가 있어 첨단기술 연구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지난 12일 독일 아헨공대 토마스 그리스 교수와 프라운호퍼생산기술연구소의 이태헌 그룹장 등 아헨지역 관계자들이 내한했다.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KITECH-NRW 한·독 자동차산업협력을 위한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연방주 경제개발공사, 아헨경제개발공사(AGIT)가 공동 주관한 행사다.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아헨지역 주요 인사를 만나봤다.
이태헌 프라운호퍼생산기술연구소 그룹장
이태헌 프라운호퍼생산기술연구소 그룹장은 아헨공대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전공은 전기·전자공학, 정보 기술 및 컴퓨터 공학이다. 졸업 직후 프라운호퍼생산기술연구소에서 연구조교를 하면서 공작기계 제어 등의 연구개발에 참여했다. 지난 7월부터 이 연구소의 그룹장(기계개발 및 디지털화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한 그는 “이공계 출신은 마음만 먹으면 몇 군데 취업할 수 있을 정도로 독일엔 일자리가 많다”고 말했다.
▷프라운호퍼생산기술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우리 연구소는 무척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정밀기계와 광학, 커팅, 첨단 제조공정과 기술통합, 초정밀기술, 레이저시스템기술, 생산계측 등입니다. 뿌리산업인 열처리 등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이 중 어떤 분야를 담당하나요.
“특수기계 제작 및 디지털화그룹을 맡고 있습니다. 고객주문에 의해 제작하는 설비입니다. 예컨대 보안 관련 홀로그램 제조기계, 표면정밀도가 나노급에 이르는 초정밀기계 등입니다. 센서와 기계를 연결하는 기술 및 스마트팩토리와 관련된 기술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동수단 관련 프라운호퍼생산기술연구소가 해온 일은.
“전기자동차인 ‘e.GO’와 ‘스트리트 스쿠터(Street scooter)’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중 e.GO는 합리적인 가격의 전기차입니다. 가격이 1만5900유로(약 2100만원) 수준입니다, 이 가운데 연방정부의 보조금 4000유로를 제하면 1만1900유로(약 1600만원) 수준의 전기차입니다. 아헨공대에 의해 개발돼 별도 법인이 설립돼 있습니다. 스트리트스쿠터도 아헨공대가 개발해 도이치포스트가 인수한 트럭모델입니다. 장기적으로 도이치포스트는 7만 대의 트럭을 스트리트스쿠터로 교체할 예정입니다.”
▷독일은 협업을 잘하는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독일은 협업이 일상화돼 있습니다. 예컨대 ‘AZL(아헨경량화통합생산센터)’은 8개 연구소와 50여 개 기업이 참여해 첨단 경량부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협업은 높은 시너지를 냅니다. 결과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죠.”
▷한국의 기업이나 연구기관과도 협업하고 있습니까.
“여러 기업과 10여 건의 프로젝트를 이미 실행했거나 진행 중입니다. 한국 기업과는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스마트팩토리와 이와 관련된 기계와 센서의 연결기술, 자동차 관련 기술, 재료공정 기술, 경량화 기술 등입니다.”
아헨특구시는 독일 내에서도 독특한 곳이다. 몇 개의 시를 포괄하는 네트워크형 조직이다. 2009년 출범했고 지금까지 독일 내 유일한 특구시다. 아헨특구시의 헬무트 에첸베르그 시장은 아헨공대 행정경제아카데미과정 학위를 수료한 뒤 몬샤우 시의회 의원을 거쳐 2009년 아헨특구시 초대시장으로 선출됐다. 지금은 재선 시장(2014~2020년)으로 재임 중이다.
그는 “아헨특구시는 효율적인 행정을 위해 몇 개 시의 공동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네트워크형 조직”이라며 “아헨 스톨베르크 율리히 등을 포괄하는 지역을 관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각각의 기존 시장 위에 군림하는 곳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런 제도를 도입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절감과 효율적인 행정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작은 시의 중복 행정을 통합해 지난 9년 동안 총 5000만유로를 절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작은 시들로 쪼개져 있다 보니 상업용지의 효율적인 활용도 어려웠다”며 “통합적인 도시계획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하나 중요한 분야는 교통시스템의 통합운영이다. 아헨과 인근 소도시 간 유동인구는 하루에 약 8만 명에 이른다. 시별로 정책을 펴면 효율적인 교통대책을 수립하기 어렵다. 이를 특구시 차원에서 풀어보자는 것이다.
에첸베르그 시장은 현재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에 대해 “하이브리드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공항 건설을 꼽는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브리드 비행기는 이륙할 때는 전기모터를 사용하고 비행 중에는 기존 항공연료를 사용하는 소형 비행기”라며 “전기모터를 사용할 때의 비행기소음은 거의 세탁기 소음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개 6~8인승이다. 이를 추진하는 것은 도심 부근에 공항을 조성해도 소음이 매우 작아 민원이 발생할 염려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그리스 아헨공대 교수는 아디다스가 23년 만에 독일에 세운 신발공장인 ‘스피드팩토리’ 구축에 관여한 주인공이다. 아헨공대 기계공학과를 수석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뒤 기계공학 박사를 획득했다. 2001년부터 아헨공대 섬유기계대 교수와 동대학 섬유기술연구소(ITA) 소장을 맡고 있다. 기술섬유 혁신소재 및 의료기술 분야의 각종 혁신상을 받았고 750여 편의 논문도 저술했다. 비올라 연주자기도 하다.
▷자동차산업과 관련된 주된 연구개발 분야는.
“크게 네 가지 분야를 들 수 있습니다. 구조의 경량화, 에어백 등 안전에 관한 분야, 음향 혹은 소음에 관한 분야, 구동 부분입니다. 예컨대 구조 경량화는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을 이용한 부품을 들 수 있습니다. BMW의 i7은 10년 전 아헨공대에서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된 차입니다.”
▷전기자동차와 관련해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내용은.
“전기자동차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거나 개발 중입니다. 대개 시내 단거리 수송용이지만 장거리 수송에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
▷요즘 자율주행자동차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율주행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대학캠퍼스에서 시험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우리의 강점은 누구나 이런 테스트를 할 수 있게 알덴호벤에 테스트장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개 어느 나라나 테스트장은 기업 소유물이지만 우리는 이를 공동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헨시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독일은 아직 자율주행차의 도로 주행이 금지돼 있다.)
▷한국과 아헨공대의 협업 사례를 소개한다면.
“대표적으로 유니테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회사는 원래 자동차구조용 접합제 등을 생산하는 업체인데 우리와 협업해 복합소재 접합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올봄 파리 국제복합소재전시회(JEC World)에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아헨공대에서 물리학과 경제지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얻은 로타르 만케 CEO(대표)는 아헨 상공회의소 근무 등을 거쳐 2016년 아헨경제개발공사 대표를 맡았다. 아헨경제개발공사는 아헨시 산하기관으로 투자유치 등을 담당하는 곳이다.
그는 아헨의 매력에 대해 “첨단기술 연구개발의 최적지”라고 단언했다. 유럽 최대의 공과대학인 아헨공대가 있고 각종 연구소가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4만여 명이 재학 중인 아헨공대에선 해마다 7200여 명의 졸업생이 나온다. 우수한 이공계 인력 덕분에 연구개발의 적지라는 것이다.
그는 “아헨에서 반경 400㎞ 안에 1억900만 명의 인구가 밀집해 있어 유럽연합 28개국의 전체 인구 5억1000만 명의 20%가량이 이곳에 있다”며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헨은 벨기에 네덜란드와 접경지역에 있어 독일 내 어떤 지역에 비해서도 글로벌화가 활발하게 진행된 곳”이라고 덧붙였다.
만케 대표는 “독일 내 다른 지역은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보조금을 주는 곳도 있지만 아헨에는 그런 정책이 없다”며 “그만큼 연구개발에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첨단기술 확보에 관심이 있는 한국 기업은 언제든지 아헨의 문을 두드려줄 것”을 주문했다.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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