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일본의 초고령화 대처법

입력 2018-09-18 17:49
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인생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추악하고 야만스럽고 짧다.”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의 한 구절이다. 홉스가 지금 다시 책을 쓴다면 인생이 짧다는 표현만큼은 빼야 할 것이다.

‘심리적 고령’의 기준점은 대략 70세다. 70세가 넘어야 스스로 노인으로 여긴다는 국내 설문결과도 있다. 71세에 이스라엘 총리가 된 골다 메이어는 “70세가 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볼 일도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벌써 50년 전 얘기다. 인간의 기대수명은 그때보다 열 살 이상 늘었다. 신(新)노년층은 건강, 의욕, 가치관에서 노인이길 거부한다.

이웃 일본에서 70세 이상이 2618만 명(20.7%)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섰다. 2차대전 직후 태어난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생)가 70대에 진입해 가속도가 붙었다. 일본은 이미 65세 이상이 28.1%에 달하는 세계 최고령국가다. 100세 이상도 7만 명에 육박한다.

고령화는 21세기 메가 트렌드다. 2030년이면 세계 65세 이상 인구가 10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고령화는 저출산과 맞물려, 인구 증가를 전제로 설계된 모든 복지제도를 흔든다. 먼저 충격을 경험한 일본의 고령화 대처법은 세계적 관심사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앞당기기와 늦추기’로 요약된다. 146년 만에 민법을 고쳐 성년기준을 20세에서 18세로 앞당기고, 고용가능 연령을 65세에서 70세까지로 늦추는 것이다. 기업들에 정년 연장이나 폐지를 권고하며, 구인난과 고령자 재고용의 일석이조를 겨냥한다. 부담이 큰 고령자 의료비 문제도 원격진료(온라인진료)를 확대해 푼다는 복안이다.

사회보장제도도 재검토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공적연금 지급개시 연령(65세)을 본인 희망 시 70세 이후로 늦추는 대신 더 받게 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30년 논쟁 끝에 2010년 연금 통합, 기금 운용 100% 민간 위탁 등으로 신뢰 구축에 힘쓴 덕에 그런 언급이 가능했을 것이다.

각 분야에서 10~20년 시차로 일본을 따라가는 한국으로선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일본보다 출산율이 더 낮고, 고령화 속도는 훨씬 빠른데 ‘폭탄 돌리기’만 하니 더 그렇다. 하지만 논의는 노인복지 확대 수준에 그치고 있다. 몇 해 전 대한노인회가 던진 ‘고령자 기준 70세’란 화두도 흐지부지됐다.

장수는 ‘문명의 선물’이지만 국내에선 대부분 한탄만 넘쳐난다. 미국 밀컨경제연구소는 “인류가 전혀 사용해본 적 없는 자원이 고령자”라고 했다. 전문지식은 오히려 노년에 원숙해진다. 81세 저술가 재러드 다이아몬드, 88세 투자자 워런 버핏, 99세 강연가 김형석 등은 여전히 지혜를 던져 주고 있지 않나. 고령화를 피할 수 없다면 능동적·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