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53)] 칼 포퍼(상) 반증주의

입력 2018-09-17 09:01
"검증 가능한 것만 과학"이라는 논리실증주의에 맞서
반증주의는 "완벽한 검증은 불가능"이라는 주장이죠



“과학실증주의는 틀렸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논리적으로 자명하거나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명제만이 의미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형이상학을 의미없는 것으로 보고 과학 지식만을 철학의 대상으로 분명하게 선포했다. 하지만 포퍼가 보기에 그들이 내세운 검증 원리는 결정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먼저 무엇이든 엄밀하게 검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흄이 제시한 질문, “내일 또 해가 뜰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를 보면 귀납 논리로는 이제껏 셀 수 없는 해가 떠올랐으니 내일도 해가 떠오를 거라고 추정하는 것은 타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결과가 많이 나온다고 절대적인 진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러셀 또한 “칠면조 입장에서는 매일 모이를 주던 주인이 어느 날 목을 비틀어 죽이는 상황은 귀납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귀납적으로 명제의 ‘참’과 ‘거짓’을 확실히 검증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따라서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검증 원리는 그들이 몰아내려 했던 형이상학은 물론이고 그들이 옹호하려 했던 과학적 지식까지도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까마귀는 검은색’ 반증될 수 있어

그래서 포퍼가 과학 이론을 정당화시킬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반증 가능성 원리’다. “과학 이론은 검증될 수 없어도 반증될 수 있다”는 말 속에는 그의 반증주의 원리가 잘 요약돼 있다. 이 말은 아무리 많은 실험의 반복도 과학 이론을 확실히 검증해주지는 못하지만,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는 단 한 번의 부정적인 실험결과로 충분하다는 의미다. 가령 ‘모든 까마귀는 검은색이다’는 명제는 검은 까마귀를 수십억 마리 찾아낸다 하더라도 확실히 검증할 수 없지만, 검은색이 아닌 까마귀를 한 마리만 찾아내면 거짓임을 반증할 수 있다. 어떤 학자는 이와 같은 검증 원리와 반증 가능성 원리의 특징을 정치인과 테러리스트에 비유해 정치인의 신변 안전은 철통경호에 의해 하루하루가 잘 보장돼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테러리스트는 단 한 번의 성공으로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더 나아가 포퍼는 이와 같은 반증 가능성을 통해 과학적인 이론과 비과학적인 이론을 구분했다. 포퍼가 보기에 마르크스의 역사 철학은 사이비 과학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사례들은 지지자에 의해 얼마든지 발견되지만, 이 이론을 반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포퍼가 든 사례를 따라가 보자.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의 경우 19세기에 영국은 노동자들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도입했다. 이러한 사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역사적 예언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은 노동자의 안전과 복지에는 무관심하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예언이 맞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자들이 그런 대책을 세운다는 것이 곧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날 것을 알고 노동자들을 달래려는 증거라고 믿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반증 가능성 없으면 비과학

포퍼가 보기에 이런 이론들은 마치 점성술과 같다. 이런 말의 특성은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아 결국 반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과학 이론들은 반증 가능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과학이라는 말이다. 이론에서 예측이 틀리면 그 이론을 언제나 철회하겠다는 것이 진정한 과학의 특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역사 철학은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날 경우 그것을 지적한 의견을 반박할 설명까지도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부르주아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고 오히려 비난한다.

포퍼는 과학은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고 이를 반증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진보하고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올바른 과학 이론이란 ‘반증주의에 입각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시도’며, 과학하는 참된 방법은 자신이 세운 이론이 거짓이라는 것을 계속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포퍼의 말처럼 자신의 앎과 삶을 치열한 반증의 잣대에 올려놓고 있는가.

● 기억해주세요

포퍼가 과학 이론을 정당화시킬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반증 가능성 원리’다. “과학 이론은 검증될 수 없어도 반증될 수 있다”는 말 속에는 그의 반증주의 원리가 잘 요약돼 있다. 이 말은 아무리 많은 실험의 반복도 과학 이론을 확실히 검증해주지는 못하지만,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데는 단 한 번의 부정적인 실험결과로 충분하다는 의미다.

서울국제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