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수가 다시 태어나는 길

입력 2018-09-16 18:14
품격과 소신 지킨 존 매케인처럼
사익 버리고 대의 위해 희생하며
핵심 가치 수호에 솔선수범해야

김현 < 대한변호사협회장 >


대한민국 보수가 위기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은 참패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보수정당 지지율이 진보정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제에서는 정당에 유력 대권 후보가 있는지가 중요한데 보수정당에는 유력 대권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에게 큰 지지를 받았던 보수가 불과 몇 년 만에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 정치인들이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이념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희생정신 또한 보여주지 못한 채 커다란 실망만 안겼기 때문이다. 청렴성을 의심케 하는 개인적인 비리와 국정 운영의 무능은 진보뿐만 아니라 보수도 용납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처럼 보수가 붕괴한 채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다. 보수와 진보는 국가의 양 날개로서 서로 경쟁하며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보수가 몰락하고 진보가 독주하는 것은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최근 타계한 미국의 보수 정치인 존 매케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보수 정치인이지만 진보 진영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는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해군 제독을 지낸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하며 한 번도 후방에 머물지 않고 베트남전 최전선에서 싸웠다. 작전 도중 미사일에 맞아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호수에 추락했다. 생포돼 고문을 받으면서도 다른 포로가 먼저 석방되도록 했다. 애국심과 타인에 대한 배려, 희생정신을 솔선수범해 보여준 감동적인 사례다.

매케인은 자신의 지지자가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의 혈통을 비난할 때 동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바마가 훌륭한 사람이고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며 네거티브 전략을 거부했다. 선거는 정책 대결이어야 하고 상호 비방은 국민을 분열시켜 국가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는 졌지만 그의 품격과 소신은 미국 국민에게 존경받았다. 당리당략을 앞세워 막말을 일삼는 대한민국 보수 정치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대한민국 보수는 각성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보수 정치인들은 진보로부터도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보편적 가치와 희생정신을 갖춰야 한다. 매케인처럼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충실한 의무 이행, 품격과 소신, 희생정신과 관용의 마음을 갖춘 큰 지도자가 나왔으면 한다. 그런 지도자가 나온다면 국민도 보수의 이념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보수란 바꿔서는 안 되는, 꼭 지켜야만 하는 기존의 가치를 수호하자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주장하려면 주장하는 자 스스로가 그 신념을 증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 안보를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의 아들은 이중국적자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관용정신도 필요하다. 진보세력을 박멸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대신 진보세력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고 많은 국민이 왜 진보정권을 지지하는지 겸허하게 돌아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공동체의 커다란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은 지도자가 희생하는 모습을 보일 때 크게 감동하는 법이다. 진보로부터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보수가 스스로의 덕목을 지켜나가는 것이 보수가 다시 태어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