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의 데스크 시각] 수익자 부담 원칙 안 통하는 금융산업

입력 2018-09-16 18:03
박준동 금융부장


[ 박준동 기자 ] 한국 금융산업은 관(官·정부와 금융당국)이 만들고 키운 게 어느 정도 사실이다. 관은 1950년 한국은행법과 은행법을 시행해 일제시대 식민 수탈에 부역했던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의 역할을 바꿨다. 1950년대 이후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국민은행, 주택은행, 외환은행 등 국책은행을 설립해 자금을 배분했다. 1962년 보험업법과 증권거래법(현 자본시장법)을 제정해 보험사와 증권사를 만들어낸 것도 관이다.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 금융업을 한국에 빨리 이식하기 위해선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관이 오랫동안 금융업계에 직·간접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부정적 측면도 생겨났다. 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나 인사 간섭, 불법 대출 지시, 인위적 주가 부양 등이 대표적이다. 눈에 잘 띄고 사건사고로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

적자 못 벗어나는 자동차보험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아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폐해도 있다. 그중 하나가 자동차보험이다. 손해보험사가 취급하는 자동차보험은 1962년 본격 시작된 이후 수십 년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흑자가 난 해를 꼽을 정도다. 최근엔 지난해 잠깐 흑자를 냈지만 올해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자동차보험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은 금융감독원을 포함한 관이 가격을 통제하고 있어서다. 올해도 손보사들은 적자를 면하기 위해 5% 안팎의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관은 2% 이상은 곤란하다고 막고 있다. 표 떨어지는 소리 듣고 싶으냐는 게 관의 얘기다.

관은 손보사로 하여금 자동차보험에서 손실본 것을 다른 보험상품에서 만회하도록 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손해보험 시장에선 ‘수익자 부담의 원칙(benefit principle)’이 작동하지 않는다. 자동차보험 가입자가 혜택을 누리도록 질병·상해·화재 등 다른 보험 가입자가 비용을 더 내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얘기하면 자동차보험이 정상화되면 다른 보험상품에서 보험료를 내릴 여지가 있다.

대부업체로 전락한 카드사들

신용카드사 문제는 더 심각하다. 카드사는 크게 두 가지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하나는 고객이 가맹점에서 카드를 긁을 때 수수료를 받는 가맹점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등 대출이다. 카드 수수료와 대출이자는 카드사 수입에서 각각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카드사들은 카드 가맹점 사업에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관이 개입해 수수료율을 낮춘 결과다. 금융위원회 등 관은 10년 전부터 카드사들을 압박해 수수료율을 낮춰왔다. 현재 평균 카드 수수료율은 1.7~1.8% 수준이다. 관이 개입하지 않고 자율로 결정할 당시 2.7~2.8% 수준에서 대폭 떨어졌다.

카드사들은 이 때문에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에서 이익을 벌충한다. 자동차보험과 마찬가지로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무시된다.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쓰는 사람들이 가맹점이 내야 하는 수수료를 내주고 있는 셈이다. 만약 카드사들이 가맹점 사업에서 어느 정도 이익을 낸다면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의 이자율을 낮출 여력이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제와 함께 혁신성장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혁신은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비정상 관행을 고치는 것도 혁신이다. 그것이 더 큰 혁신일 수도 있다. 자동차보험과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는 고쳐져야 할 비정상 관행이다. 이를 바로잡는 길은 관의 개입을 줄이는 것이다. 관의 개입이 지속될수록 수익자 부담의 원칙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