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어 유럽·加·호주·日도 제동
국가안보 이유로 기술유출 차단
中 해외투자 2년새 36.5% 위축
對美투자는 상반기 90% 격감
[ 강동균 기자 ] 세계 각국이 국가안보를 앞세워 중국 자본의 직접투자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중국과 통상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캐나다 호주 일본 등도 중국 기업의 인수합병(M&A)에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다. 차이나머니에 대한 규제가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4일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기업의 해외직접투자(ODI)는 1246억달러로 사상 최대였던 2016년의 1961억달러에 비해 36.5% 급감했다. 중국의 해외 투자가 감소한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 법률회사 데커트의 제러미 주커 대표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자본 투자에 대한 각국의 경계심이 커진 데 따른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이런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중국 기업이 해외 첨단기술기업을 사들인 뒤 인수 기업 기술을 군사부문 등 다른 용도로 전용하거나 민감한 데이터 확보 등에 활용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를 밀어붙이면서 이런 걱정은 더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 정부는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중국 자본의 투자 제안을 국가안보를 이유로 퇴짜놨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가 미국 최대 송금업체인 머니그램을 인수하려던 것을 비롯해 하이난항공(HNA)그룹의 헤지펀드 스카이브리지캐피털 인수, 중국 투자회사의 반도체 장비업체 엑세라 인수 등이 미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컨설팅회사 로듐그룹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기업의 대(對)미국 투자는 18억달러에 그쳤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90% 넘게 줄어든 수치다. 최근 7년 동안 가장 적은 투자 규모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자본의 미 기업 인수 때 심사를 담당하는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해 앞으로 중국 자본의 미국 투자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도 차이나머니 규제 강화에 가세하고 있다. 지난달 독일 정부는 중국 기업 옌타이타이하이가 독일 기계장비 제조업체 라이펠트메탈스피닝을 인수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독일이 외국 기업의 자국 기업 인수를 제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뒤 M&A를 제한한 첫 사례다. 2016년 독일 최고 로봇제조기업 쿠카가 중국 기업에 인수된 것에 놀란 독일 정부는 기간산업에서 정부가 M&A를 제한할 수 있도록 법을 뜯어고쳤다.
지난 5월엔 캐나다 정부가 중국 국유기업 중국교통건설과 자국 대형 건설업체인 에이컨그룹이 15억캐나다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의 M&A 계약을 하려는 것을 막았다. 그동안 차이나머니에 우호적이던 영국도 7월 국가안보와 관련된 분야에서 해외 기업의 자국 기업 인수를 정부가 불허할 수 있는 권한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호주와 일본 정부도 최근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와 ZTE가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SCMP는 “중국 정부는 미국이 막으면 다른 나라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중국 자본의 투자를 가로막는 국가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