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군미필 고객도 전액 대출'
SNS 온라인서 2030 타깃 홍보
중고차 간판 걸고 '대부업' 성행
차량 판매보다 할부금융 수익성 커
신용등급 떨어뜨려 사채 권하기도
자동차 담보대출 잔액 매년 급증
"제2 경제위기 또 다른 뇌관" 우려
[ 이수빈 기자 ] 20대 직장인 박동훈 씨는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중고자동차 광고를 보고 딜러에게 연락했다. 바로 만나자는 답이 왔다. “하루 커피 두 잔만 안 마시면 외제차를 탈 수 있다”는 딜러의 꼬드김에 넘어가 대출을 받아 외제차를 구입했다. 월 100만원에 가까운 고금리 할부금을 꼬박꼬박 갚기 어려웠던 박씨는 연체 3개월 만에 차를 압류당했다. 그는 “돈이 생겨 대금을 갚고 나서 차를 되찾으러 갔지만 이미 제3자에게 팔린 뒤였다”고 말했다.
◆외제차 저렴하게 판다더니…
최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소득이 없고 신용이 낮아도 고가의 중고 외제차를 싼 값에 할부 구매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일부 악덕 중고차 판매상 때문에 20~30대 젊은이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중고차 허위매물 게재 또는 담보대출금 편취 등의 자동차관리법 위반 사건은 지난해 1만8542건으로 4년 전보다 7000건가량 늘었다. 중고차 대출사기 등 대부업법 위반 건수도 지난해 1233건으로 2015년(900건)보다 300여 건 급증했다. 대규모 중고차 판매단지와 가까운 경기 부천 원미경찰서에는 이 같은 중고차 대출사기 사건이 하루에만 2~3건씩 접수되고 있다.
페이스북 등 SNS에도 “다른 업체에서 대출이 안 되는 20대 군미필 고객님을 아우디 S4를 구입하도록 당일한도 2700만원까지 ‘만들어’드렸다”는 식의 홍보 게시물이 많이 올라와 있다. 14일 기준 페이스북에는 중고차 전액할부 홍보 페이지만 110개에 달한다. 이들 판매자는 신용 7~8등급, 군미필, 무직자 등 금융권에서는 대출받기 어려운 사람도 전액 할부로 중고 외제차를 구입할 수 있다고 부추긴다. 여기에다 생활비 등으로 쓸 수 있는 여유자금까지 빌릴 수 있다며 소비자를 현혹한다.
중고차 판매상이 대출금을 중간에서 가로채거나 이벤트에 당첨됐다며 중고차 전시장으로 부른 뒤 대출계약에 사인하게 하는 등 신종 사기수법도 등장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고급 외제차를 중고로 저렴하게 판매하겠다”며 꾀어내 고금리 대출을 유도하고 소유권을 넘겨준 뒤 실물은 인도하지 않았다는 사기 민원을 다수 접수했다. 이들 판매상은 이같이 빼돌린 자동차를 해체한 뒤 부품을 중동 지역으로 수출했다. 이들은 소유권을 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비자를 안심시켰다. 금감원 관계자는 “중고차 판매상들이 한도를 ‘만들어’ 주고, 여유자금을 ‘지원해준다’는 표현을 쓰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직업 등을 허위로 작성하는 식으로 대출 요건을 조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정상적으로 넘겨받았어도 3개월 이상 할부금을 갚지 못하면 차는 압류된다. 애초에 신용등급이 낮은 소비자가 대출금을 잘 갚는 사례가 드물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이렇게 압류한 자동차는 제3자에게 판매해 이익을 취한다.
◆차량보다 할부 판매가 더 짭짤
중고차 판매상들이 할부 영업에 혈안인 이유는 수익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경기 파주에서 10년 이상 중고차 판매업체를 운영해온 김모씨는 “중고차 판매보다 할부 금융이 돈이 된다”며 “40~50대 소비자 중 외제차를 살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보유하고 있어 아직 차가 없는 20~30대를 겨냥하는 딜러가 많은 것”이라고 귀띔했다. 자동차 딜러가 받을 수 있는 캐피털 상품 판매 수수료는 현행법상 5%가 상한선이다. 하지만 ‘설정대행 수수료’ 등 실제 소비자가 납부할 의무가 없는 명목의 돈을 추가로 받아내는 등 폭리를 취한다.
판매금을 부풀려 대출 수수료를 높이기 위해 여러 수법이 동원된다. 대표적인 게 ‘계약빵’이다. 고가 외제차를 반값에 판매한다며 허위 매물을 올린 뒤 구매자가 찾아오면 해당 자동차는 이미 판매됐다고 둘러대고 다른 차량을 보여줘서 계약금부터 받아내는 방식이다. 일단 계약하고 나면 추가요금을 내라고 요구하는 식으로 판매금을 높인다. 구매자가 자금 부족을 호소하면 자동차를 담보로 대출받도록 유도한다. 인천지방법원은 지난해 이런 방식으로 시세보다 500만~3000만원가량 가격을 높여 차량을 판 뒤 고금리 대출상품을 중개한 중고차 매매상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 밖에 중고차 딜러가 대출금을 중간에서 가로채거나 당초 안내보다 높은 금리에 대출 계약을 맺는 등의 사기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차 판매상이 아예 대부업을 겸하기도 한다. 경기 부천이나 인천 대규모 중고차 매매단지에는 간판만 중고차 매매로 달아놓고 실제로는 대부업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제2 금융권 신용조회를 하는 것만으로도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것을 악용해 수차례 신용조회부터 한 뒤 사채를 쓰도록 유도하는 사례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2의 금융위기’ 뇌관 될 수도
아우디 BMW 등 중고 외제차를 3개월간 무료 시승하게 해준다며 유인해 대출계약서에 사인하도록 하는 신종 사기 수법도 등장했다. SNS에 무료 시승 이벤트라며 홍보 게시물을 올린 뒤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당첨됐다”고 연락한다. 이후 중고차 판매장으로 끌어들인 뒤 보증금으로 2000만~3000만원을 내야 하니 캐피털 대출을 받으라고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 명의도 이전해준다. 사실상 중고차 판매계약을 체결한 셈이다. 약속된 3개월이 지난 뒤 차를 반납하려고 하면 “시세가 바뀌었다”며 낮은 가격에 재매입한다. 보증금 차액과 높은 이자만큼의 수익을 올리는 것. 재매입조차 하지 않고 잠적해버리는 사기꾼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계약서를 이미 쓴 뒤에는 되돌리기 힘드니 함부로 계약해선 안 된다”며 “시세보다 저렴하게 판다는 판매자는 반드시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20~30대 젊은 층을 노린 중고차 담보대출이 향후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야 할 젊은이들이 고금리 대출에 빠져 순차적으로 파산하기 시작하면 큰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작년부터 중고자동차 담보대출 건전성이 떨어지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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