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신도시의 명암

입력 2018-09-11 19:05
김태철 논설위원


[ 김태철 기자 ] 노태우 정부가 ‘주택 200만 가구 건설 계획’을 발표한 것은 1988년이었다. ‘3저(저금리, 저물가, 원화 약세) 호황’과 88서울올림픽 특수가 겹치면서 주택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였다. 여기에다 베이비부머들의 결혼이 맞물리면서 1988년 한 해 동안 서울 집값은 24%나 치솟았다. 당시 유행했던 ‘방 빼!’라는 말은 집값 폭등 현상을 빗댄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89년 시작된 게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개발이었다. 서울 광화문을 중심으로 반경 20㎞ 안팎의 지역에 5개 주거단지 총 28만2000여 가구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 전체 주택 수의 20%에 달하는 규모였다. 서울 집값은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1991년 하락세로 돌아섰다. 1기 신도시는 전철 등을 통한 뛰어난 서울 접근성, 좋은 주거환경과 우수한 학군 덕분에 중산층의 인기 주거지역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일사천리로 개발이 진행되다 보니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일단 집부터 지어놓고 그 뒤에서야 편의시설을 건설해 입주민들이 한동안 각종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일시에 공사가 몰리면서 건축자재 부족으로 바다모래 파동이 벌어졌다.

2003년 시작된 2기 신도시 개발 배경도 1기 때와 비슷하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공급이 급감했지만 이후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었다. 노무현 정부 5년(2003년 2월~2008년 2월)간 56.4%나 상승했다. 판교·동탄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2008년 말에야 집값이 진정됐다.

1기 신도시와 달리 2기 신도시는 서울 근접성과 도로 등 인프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성남 판교 등은 인기가 높지만 외곽인 파주 운정과 양주 옥정은 아직도 주택용지가 다 팔리지 않았다. 수조원에 달하는 토지보상비가 풀리면서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기도 했다. “신도시 건설의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는 ‘신도시 무용론’이 급부상한 배경이다.

정부가 빠르면 이번주 ‘부동산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신도시급에 준하는 수도권 택지개발지구들을 지정할 예정이다. 거론되는 곳들이 서울과 멀어 “수요 분산 효과가 있겠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린벨트 훼손도 우려된다.

선진국들은 신도시 개발을 중지한 지 오래다.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 등은 신도시를 통한 수평적 확장에서 벗어나 도심 재개발을 통한 수직적 확장이 대세다.

고밀도·초고층 도심재생 사업으로 주거와 상업·업무·문화 등이 어우러진 ‘콤팩트 시티(compact city)’를 구현하고 있다. 도시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일자리도 창출하기 위해서다. 서울도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풀고 용적률을 끌어올려 도심 내 ‘미니 신도시’를 만든다면, 도시 경쟁력도 높이고 대규모 수도권 택지지구 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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