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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선발 시험의 역사
[ 신연수 기자 ] 근대 최초 법조인 선발 시험은 1947~1949년 시행된 조선변호사시험이다. 이후 1950년 사법관시보의 임명수습 및 고시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고등고시 사법과가 1963년까지 16회에 걸쳐 치러졌다. 그러다 1963년 사법시험령이 공포되고 제1회 사법시험이 시행됐다. 사시 초기에는 한 해 두 차례에 걸쳐 시험이 치러지기도 했다. 매년 한 차례 시행이 정착된 것은 1971년 13회 시험부터다.
초기의 사시는 평균 60점 이상을 얻으면 합격하는 절대평가 방식이었다. 합격 인원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지만 시험이 어려워 합격자가 많지 않았다. 1977년까지 매회 합격자 규모는 5~83명으로 두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1978년 제20회 시험에서 100명을 선발해 처음으로 합격자 세 자릿수를 돌파했다. 1996년 제38회 시험에서 500명, 2004년 제46회 시험에서 1000명을 넘기며 합격자 정원이 대폭 늘어났다.
사시는 반세기 넘는 기간 일종의 사회적 사다리로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 역할을 해왔다. 고졸 학력으로 사시를 통과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조재연 전 대법관이 강원도 어촌의 피란민 가정에서 태어나 주경야독 끝에 1980년 제22회 사시에서 수석 합격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러나 ‘고시 낭인’과 ‘기수 문화’ 등 사시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법조인 선발 제도에 변곡점이 찾아왔다.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 2009년 전국 25개 로스쿨이 개교하며 사시 선발 인원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사시인 2017년 제59회 시험에선 55명만 선발됐다.
대신에 로스쿨 졸업(예정)자만 응시할 수 있는 변호사시험이 법조인을 배출하는 유일한 통로가 됐다. 2012년부터 시행된 변시 합격자 수는 1500명 내외를 유지하고 있으나 응시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합격률은 점차 떨어지는 추세다. 2018년 제7회 변시에선 응시자 3240명 중 1599명이 합격해 합격률이 50%를 밑돌았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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