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더 미뤄진 DTC 확대… 업계 "도산할 지경"

입력 2018-09-10 17:52
수정 2018-09-11 09:19
'DTC 규제완화' 원점으로

유전자검사 항목 확대 방안
복지부, 내년 시범사업 추진
내달 자문회의 열어 확정

업계 "충분히 검토했는데…"
해외로 기업 이전 검토도


[ 양병훈 기자 ]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의 허용 범위 확대가 일러야 내년 하반기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허용 확대안의 통과가 불투명한 데다 복지부가 별도의 규제 완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연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던 DTC 규제 완화가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업계 일부에서는 “회사를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왔다.


◆복지부, 점진적으로 완화

10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내년 1~6월 DTC 범위 확대에 대한 시범사업을 거쳐 하반기에 이를 실제로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오는 11월 제출받을 전망이다. 이 결과를 검토한 뒤 내년 7~8월 복지부 고시 개정을 거쳐 8~9월께 시행하는 방안을 담을 계획이다.

보고서에는 DTC 허용 범위를 100여 개 종류로 늘리는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에너지 대사, 소화 흡수 등 대부분의 웰니스(건강 상태 개선) 항목이 포함된다. 현재 국내에서 DTC는 탈모 피부상태 등 미용과 관계가 깊은 12가지 항목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 암 치매 등 중대질환은 확대 범위에 들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대질환 DTC를 금지하는 현행 규정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복지부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운영한 ‘DTC 유전자검사 제도개선 민관협의체’는 중대질환 검사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때 허용을 검토한 검사항목 수는 157개였다. 여기서 중대질환을 제외해 100여 개로 줄었다.

연구용역을 맡고 있는 정선용 아주대병원 병리과 교수는 “중대질환을 포함하는 방안은 반대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유전자 검사업계도 크게 원하지 않고 있다”며 “업계가 다음달 10일까지 통일된 의견을 주기로 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다음달 17일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어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범사업은 가능한 한 유전자 검사 업체를 많이 선정해 시행할 예정이다. DTC 업체들이 시장경쟁을 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겠다는 것이다. 한국유전학회가 운영하는 ‘유전상담사 인증제’를 확대 시행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정 교수는 “지금까지 이 인증을 받은 사람이 30명인데 최소한 100명 이상이 업계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또 1년 기다리란 말이냐”

업계는 DTC 규제 완화 시기가 또 늦춰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신동직 메디젠휴먼케어 대표는 “차일피일 규제 완화가 미뤄지면서 이미 어려움에 처한 회사가 많은데 또 늦춰지면 도산하는 회사가 줄줄이 나올 것”이라며 “이미 충분히 검토했는데 또 시범사업을 거치겠다고 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회사도 있다”고 덧붙였다.

DTC 범위 확대는 법률이 아닌, 복지부 고시만 개정하면 된다. 국회를 거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변수다. 상당수 위원이 소비자를 현혹할 수 있다는 이유로 DTC 범위 확대에 부정적이어서다. 이 때문에 복지부가 고시 개정을 강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협의체는 질 높은 검사를 할 수 있는 업체를 가려 등급을 부여하는 내용의 ‘검사실 인증제’를 전제 조건으로 DTC를 확대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이 방안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올라갔으나 “인증제와 DTC 범위 확대를 분리 심의하겠다”는 입장만 내놓고 구체적인 결정을 미뤘다.

■DTC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irect to consumer). 환자가 병원을 거치지 않고 민간 유전자 검사업체에 직접 검사를 의뢰하는 방식.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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