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반 민어 반' 섬 바다엔 波市의 추억이 신기루처럼…

입력 2018-09-09 16:15
여행의 향기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22> 전남 신안 임자도

12㎞나 펼쳐진 백사장 해변에서 사막을 만나다


“고사리 장마가 지나고 난 바닷길 깊게 패인 여울물 소리에 새우 떼들의 선잠을 깨우는 밴뎅이와 알 품은 병어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전장포 앞바다에서는 서남쪽 흑산해에서 진달래꽃 피기를 기다렸다가 뻘물 드리우는 사리물 때를 기다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

마늘 뽑고 양파 캐어 말리던 늦은 오후, 구년은 자랐을법한 일 미터의 십키로짜리 숫치를 토방에 눕히고 추렴하여 내온 병쓰메에 네 등살은 막장에 얹어 먹고 목살은 묵은지에 감아먹고 늙은 오이짠지는 볼 살에 얹어먹고 고추 참기름 장에는 부레와 갯무래기 뱃살을 적셔먹고 갈비뼈와 등지느러미 살은 잘게 조사서 가는 소금으로 엮어내는 뼈다짐으로 먹어도 좋고 내장과 간은 데쳐서 젓새우 고추장에 볶아내고 쓸개는 어혈이 많아 어깨가 쳐진 친구에게 내어주고 아랫턱 위에 붙어있는 입술 살은 두 점 밖에 안 나오니 내가 먹어도 될 성 싶은 깊은 고랑 주름살에도 꼬리뼈 살을 긁적거리고 있노라면 봉굴수리잡 옆의 대실 개복숭아는 제법 엉덩이가 빨갛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새우 놀던 모래밭을 파헤쳐 집지을 때부터 플랑크톤이 없던 모래밭에 새끼를 품어 내지 못한 오젓, 육젓이 밴뎅이를 울리고 깡다리를 울리고 병어를 울리고 네 입맛 다실 갯지렁이도 없는 바다에 올라 칼끝에 노래하던 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은 다시 볼 수 없으리라.” - 김옥종 詩 ‘민어의 노래’ -

민어탕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하품

김옥종 시인의 <민어의 노래>처럼 민어 맛을 찰지게 노래한 시를 이제껏 접해 본 적이 없다. 민어의 고장인 신안 앞바다 섬 태생의 시인은 한국 최초의 이종격투기 k1 선수였다가 요리사가 됐고 이제는 도마 위에 시를 쓴다. “등살은 막장에 얹어 먹고 목살은 묵은지에 감아먹고 늙은 오이짠지는 볼 살에 얹어먹고 고추 참기름 장에는 부레와 갯무래기 뱃살을 적셔먹고 갈비뼈와 등지느러미 살은 잘게 조사서 가는 소금으로 엮어내는 뼈다짐으로 먹어도 좋고.”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도대체 민어 맛을 안 보고는 견딜 재간이 없어진다. 온 산하를 불태워 버릴 듯이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대, 민어탕 한 그릇은 드셔 보셨는지. 금값이던 민어 시세가 말복이 지나면 뚝 떨어진다. 이때가 민어를 제대로 맛볼 기회다. 무더위에 지친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복달임에 민어탕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하품”이라 했다. 옛날 서울의 양반들은 여름철 삼복더위를 나는 데 민어를 으뜸으로 꼽았다. 민어는 여성들에게 특히 좋아 해산한 산모도 민어탕을 먹었다. 민어 껍질과 부레도 별미다. 부레는 날것으로도 먹지만 예전에는 속을 채워 순대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민어 껍질에 밥 싸먹다 전답 다 팔았다”는 식담이 있을 정도로 민어 맛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했다.

신안의 섬, 임자도는 여름 보양식, 민어의 고장이다. 민어는 여름 산란철 임자도 민어를 최고로 꼽는다. 민어는 새우를 가장 좋아하는데 임자도 바다는 새우 어장이기 때문에 여름이면 민어떼가 몰려들어 성시를 이룬다. 과거에는 임자도 민어파시가 유명했고 지금도 임자도 해역은 민어의 산란장이다. 일제시대에는 7~8월 민어철이면 각지에서 몰려온 수백 척의 어선으로 북적였다. 일본의 규수 지방에서 온 어선들도 있었다. 상선들은 조선과 일본의 어선들이 잡은 민어를 얼음에 재워서 일본으로 운송했다. 일본에서는 임자도 민어로 고급 어묵을 만들었다. 민어철 임자도 하우리 해변과 그 앞의 대태이도 소태이도 두 섬 사이의 백사장에는 거대한 파시촌이 형성됐다.

임자도가 들썩였던 타리 파시의 위력

임자도 바로 앞의 대태이도를 일본인들은 타리섬이라 했다. 그래서 임자도 파시는 타리 파시로 불렸다. 일본 규슈 지방 어부들은 목포는 몰라도 타리섬은 안다 했을 정도로 타리 파시의 위세는 대단했다. 파시 때는 임자도 하우리 해변과 대태이도 사이 바다가 어선, 상선들도 꽉 찼다. 배들을 다리 삼아 섬과 섬 사이를 건너다녔을 정도였다. 대태이도, 소태이도는 섬타리, 하우리 백사장은 육타리로 불렸다. 섬타리, 육타리 양쪽에서 열린 파시를 통칭해 타리 파시라 했던 것이다. 당시 신문기사에 난 타리 파시 소식.


“타리어장이 개시된 지 300년이 넘었다. 민어 어장으로는 타리어장이 가장 크고 다음은 굴업어장. 농가 한 채뿐이던 섬 타리에 파시가 서면 가건물이 수백 개 생기고 어부만 수천 명, 놀러오는 사람만 매일 50~60여 명 왕래. 가건물 160호 중 병원 1곳, 음식점 90호, 요리점 15호, 잡화상 6곳, 이발관 3곳 등. 요리점에는 일본 조선 기생 합해서 130여 명의 창기. 선구상도.”(1938년 동아일보 임봉순 기자의 임자도 기행)

파시가 서면 해변에 가건물이 들어서고 수백 곳의 요릿집, 색주가, 잡화점과 선구상, 이발소, 이동 목욕탕 등이 생겼다. 조선 기생, 일본 게이샤들의 젓가락 장단에 선주와 선원들, 상인들은 날 새는 줄 몰랐다. 여름 임자도는 도시의 유흥가를 방불케

다. 칠월 칠석이면 풍어제가 모셔지고 활쏘기와 노래자랑대회도 열렸다. 인근 지방의 구경꾼들도 놀러 왔다. 민어를 실어가는 일본의 저장선도 100여 척이나 찾아들었다. 목포 군산 사이를 하루 4회 오가는 여객선 3척이 타리와 낙월도 두 섬을 경유했다. 임시 파출소와 병원도 생겼다. 파시는 여름철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신기루였다.

타리 파시에는 갖가지 사연이 전해지는데 그중에서도 타리 기생 이야기는 가슴 아프다. 기록이 없고 구전으로만 전해진다. 어느 해 여름 일본 어부에게 조선 기생 한 사람이 맞아 죽었다. 기생들은 주재소(파출소)로 몰려가 항의했지만 살인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파시 촌에 있던 타리 기생 30여 명은 동료의 억울한 원한을 풀길이 없자 다 함께 양잿물을 마시고 자결했다. 주민들은 이들의 시신을 하우리 모래밭에 묻어줬다. 하우리 해변에 서면 아직도 조선 기생들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전장포 마을 한국 최대 새우젓 산지

예전만은 못해도 여전히 임자도는 민어의 고장이다. 임자도에서는 민어 중에서도 마른 민어를 최고로 친다. 임자도 사람들은 그것을 '건정' 민어라 한다. 이슬 맞추지 않고 1주일 정도를 말린다. 무더위로 지친 몸에 기력을 넣어주는 음식으로 민어탕을 첫손에 꼽는 것처럼 모든 민어 요리는 보양식의 으뜸이다. <자산어보>에도 “민어 부레로 만든 아교주는 허약함과 피곤함을 치료하고 몸이 이유 없이 야위는 것을 막아준다”고 기록됐을 정도다. 기침과 코피 나는 것도 멈추게 한다 했다. 당연히 임자도에서 민어를 보양식으로 먹었다. 건정 민어탕을 끓일 때는 남녀에 따라 끓이는 방법이 달랐다. 남자들 먹을 것은 쌀뜨물에 더덕을 넣고 끓인 반면 여자들 몫은 쌀뜨물에 산도랏(산도라지)을 넣고 끓였다. 이것을 민어곰탕이라 했다. 산모에게 특히 효과가 좋아 산도랏 민어곰탕을 먹으면 젖이 쑥쑥 잘도 나왔다고 했다.


요즈음 임자도 앞바다에서 나는 민어는 대부분 증도로 가는 길목의 지도읍 송도 위판장에서 위판된다. 송도는 연륙이 돼 있으니 자동차로 들를 수 있다. 중매인들은 경매를 통해 낙찰받은 민어를 자신의 상점에서 판매한다. 위판장 부근에는 민어를 해체해서 회를 떠주는 곳도 있는데 중매인들에게 부탁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먹기 좋게 회를 뜬 민어를 택배로 받을 수 있다. 회를 뜨고 난 나머지 부산물도 챙겨서 주니 맑은 곰국으로 푹 끓여 먹으면 더없이 좋은 보양식이 된다.

임자도 전장포마을은 한국 최대의 새우젓 산지다. 한 해 평균 1000여t의 새우를 잡는데 이는 전국 새우젓 생산량의 60~70%를 충당한다. 전장포 마을 뒤편 솔개산 기슭에는 길이 102m, 높이 2.4m, 넓이 3.5m의 말굽모양 토굴 4개가 있다. 토굴에서는 1년 내내 새우젓이 곰삭아 간다. 새우젓은 이 토굴들과 임자도 교동 마을에서 나는 소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선시대에도 이 토굴에서 숙성된 새우젓이 마포 나루까지 올라가 한양사람들 밥상에 올랐다.

12㎞나 되는 사막처럼 광활한 백사장이 이채

임자도는 재원도와 함께 신안군 최북단에 속한 섬이다. 면적 40.87㎢, 해안선 길이 81㎞의 땅에 3300여 명의 사람이 살아간다.


모래땅인 섬의 토질 때문에 들깨(荏)가 많이 생산돼 임자도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대둔산(320m), 삼각산(212m)·불갑산(224m)·조무산(206m) 등의 산들이 섬의 외곽으로 솟아 있고 섬의 중앙부와 북부는 평지여서 농경지가 들어서 있다. 이 들판에서는 주로 대파 농사가 지어진다. 민어, 새우젓과 함께 대파 또한 임자도의 특산물이다.

임자도의 농토에서는 거의 대부분 대파만을 경작한다. 대파의 생장 기간이 길어 2모작을 할 수 없으니 한 해 농사는 오로지 대파 하나에 의존한다. 대파는 4월 말부터 6월 사이에 파종한 뒤 겨울에 수확한다. 임자도는 섬 전체가 사막지형이다. 해변만이 아니라 밭들도 온통 모래땅이다. 그런데 이 모래밭이 겨울 대파 농사에는 더없이 유리하다. 모래땅이 대파를 잘 자라게 해서가 아니다. 겨울이 유독 추울 때면 대파 가격이 부쩍 올라간다. 그때는 임자도 등의 모래땅에서 농사를 짓는 대파밭은 호황을 누린다. 흙 땅은 얼어서 대파를 뽑아내면 끊어져버려 뽑아낼 수가 없다. 하지만 쉽게 얼지 않는 모래땅에서는 대파가 잘 뽑힌다. 그러니 겨울이 지독히도 추울 때는 대파가 임자도, 자은도 등의 모래섬에서만 출하된다. 당연히 가격은 뛰고 섬의 대파 농가의 소득도 올라간다. 반면에 겨울이 너무 따뜻하면 경쟁력이 떨어져 별 재미를 못 본다.

임자도에는 또 하나의 귀중한 특산물이 있다. 해수욕장이다. 한국 최대의 해수욕장은 어딜까. 서해안 최대라는 대천해수욕장이 3.5㎞, 동해안 최대인 경포해수욕장이 6㎞, 해운대 해수욕장은 1.8㎞에 불과하다. 그런데 임자도에는 무려 12㎞나 되는 백사장이 있다. 한국 최장 해수욕장이다. 대광리에서 전장포까지 하나로 이어진 해변이 그것인데 해변은 사막처럼 광활하다. 백사장은 끝이 없고, 찾는 이들이 많지 않으니 그 너른 해변에서는 누구든 자신만의 해수욕장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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