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상류사회' 변혁 감독이 밝힌 19禁 노출의 이유

입력 2018-09-09 08:38
수정 2018-09-10 09:14


꽉 막힌 예술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포용하는 인자한 교수님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도 공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지만 강요하지 않는 사람, 영화 '상류사회'로 10년 만에 돌아온 변혁 감독에 대한 이야기다.

'상류사회'는 인기와 존경을 동시에 받는 경제학 교수 태준(박해일 분)과 실력을 갖춘 부관장 수연(수애 분) 부부가 상류사회에 입성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상류사회의 적나라한 욕망을 다룬 작품. 변혁 감독은 2009년 '오감도' 이후 10년 만에 내놓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주홍글씨', '오감도'에서 보여줬던 파격적인 노출은 '상류사회'에서도 어김없이 포함돼 있다. '주홍글씨' 개봉 이후 주연배우였던 이은주가 사망하면서 논란에도 휩싸였고, 그로 인한 루머가 아직까지 유통되면서 현재 고소도 진행 중이다. 변혁 감독은 "내가 문제가 있었다면 고의적이라도 (노출을) 피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작품에서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극에서 등장하는 노출은 총 세 번. 관장의 자리를 눈 앞에서 놓치게 돼 벼랑에 몰린 수연이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해 10년 전 헤어졌던 신지호(이진욱 분)를 다시 찾아가면서 한 번, 정계에 진출하게된 태준이 제자였던 국회의원 비서관 박은지(김규선 분)에게 흔들리면서 한 번, 마지막으로 대기업 회장 한용석(윤제문 분)이 일본 AV배우 하마사키 마오와 펼치는 예술 활동이다.

변혁 감독은 "이 영화의 타깃은 처음부터 아동과 청소년이 아니었다"며 "'인생을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느끼는 40대, 50대 층이 볼만한 내용이었고, 신의 강도도 그에 맞춰 갔다. 그들에게 울림을 주는게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성균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집중했던 변혁 감독은 영상 예술, 설치 미술 등에도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상류사회'의 화두인 욕망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작품 활동을 하면서 '왜 이시기에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토록 열심히 달려가나'라는 궁금증으로 시작했다.

"작품을 해야겠다는 특별한 모티브나 사건은 없었어요. 그냥 다들 너무 열심히 사는거 같더라고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대학에서도 좋은 직장에 가려 열심히 하고, 직장에서도 너무너무 열심히 사는데, 왜 그럴까. 그걸 통칭해서 '상류사회'라고 표현한거죠. 상류사회는 누군가에겐 목표가 되지만, 성과주의에 눌려 감춰졌던 이면의 문제들도 이제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걸 영화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획의도와 목표의식은 뚜렸했지만 변혁 감독은 자신의 주장만 강요하진 않았다. "왜 그걸 이해못하냐"가 아니라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태도였다. 작품을 소개할 때도 "-하다"가 아닌 "-인것 같다"는 화법을 사용하면서 "대중예술은 어떻게 읽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냐"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배우들과 스태프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노출 장면이 있었음에도 큰 갈등 없이 촬영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사전에 변혁 감독이 배우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리했던 것이 주요했다.

"순수미술은 절대적인 권력구조가 있잖아요. 이해하지 못해도 박수를 치고, 재미가 없다면 스스로의 무지에 반성하죠. 절대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그런데 대중이란 단어가 붙으면 달라지죠. 제가 20년 영화를 했어도, '영화 이상해요'라고 댓글을 달 수 있는 거에요."

특히 한용석과 AV배우의 정사 장면에 대해 일각에선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변혁 감독은 이 역시도 수용했다. "그런 반응도 의도했다"며 "뉴스나 산업 현장에서 보여지는 추악한 갑질과 비슷한 반응이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몇몇 캐릭터들이 실제 인물과 겹쳐 보이는 것에 대해선 경계했다. 재벌들의 돈세탁을 해주던 큐레이터 수연은 신정아, 태준과 은지의 관계는 안희정 전 도지사와 비서 김지은 씨의 스캔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변혁 감독은 "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캐릭터"임을 강조했다.

"갤러리와 재벌의 관계는 이슈화된 부분 중 일부를 가져온 것일 뿐 사건 자체를 가져온 게 아니에요. 안희정 전 지사 사건의 경우도 제가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을 마친 후 알려진 거고요. 한 회장 캐릭터 역시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는 회장님은 있지만 취미로 폭력을 쓰는 회장님은 '상류사회 사는 사람들은 뭘로 재미를 느낄까?'라는 고민에서 나온 거에요."

영화의 메시지 전달법은 거침없고, 각각의 캐릭터는 위험할 정도로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변혁 감독은 교회 성가대 출신에 평소엔 온화한 성품을 자랑한다.

"영화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제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긴 해요. 지금의 전 괜찮은 부분이 더 많이 보여서 그런게 아닌가 싶고요.(웃음) 물론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어요. 좋은 이야길 하고, 좋게 넘어 갈 수 있는데, '왜 굳이 안좋은 얘길 하고 넘어가냐'는 얘기도 들어요. 그런데 추악한 걸 인정해야 그 다음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게 '상류사회'에서도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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