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구독경제 시대

입력 2018-09-04 20:45
고두현 논설위원


미국 벤처기업 무비패스는 지난해 월 9.95달러만 내면 한 달 내내 극장에서 영화를 매일 한 편씩 볼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회원이 급증해 올 상반기 300만 명을 넘어섰다. 수익은 이용자의 관람 패턴 등을 분석한 데이터 판매로 올린다.

월정액을 받고 매달 면도날 4~5개를 배송하는 회사 달러셰이브클럽은 창업 5년 만에 회원 320만여 명을 확보했다. 전동칫솔 회사 큅은 월 5달러에 새 칫솔모를 3개월마다 보내주는 서비스로 6000만달러(약 67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월 139달러에 명품 의류를 마음대로 골라 입도록 서비스하는 패션업체도 등장했다.

이처럼 일정 금액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활용하는 경제활동을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라고 부른다. ‘구독’이란 용어는 신문 정기구독에서 따온 것으로 ‘소유’와 ‘공유’에 이은 최신 경제모델이다. 미국에서만 지난해 이용자가 1100만 명을 넘어섰다.

구독경제는 무제한 스트리밍 영상을 제공하는 넷플릭스의 성공 이후 다른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월 9.99달러에 뉴욕 맨해튼의 수백 개 술집에서 매일 칵테일 한 잔씩 마실 수 있도록 한 스타트업 후치는 지난해 200만달러(2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일본에서는 월 3000엔(3만원)에 술을 무제한 제공하는 술집이 성업 중이다. 한국에서도 위메프의 W카페 등에서 월 2만9900원에 1990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를 원없이 마실 수 있다.

이 같은 ‘넷플릭스 모델’은 헬스클럽과 병원 등 건강·의료 영역까지 퍼지고 있다. 옷이나 화장품, 생활용품 분야에서는 ‘정기배송 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란제리 회사 아도르미는 개인맞춤형 속옷과 브래지어 등을 배송하는 서비스로 지난해 매출 1억달러(1060억원)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고급 자동차를 바꿔가며 탈 수 있는 이른바 ‘렌털진화형 모델’이 등장했다. 월정액은 볼보 600달러(67만원), 포르쉐는 2000달러(220만원), 벤츠는 1095달러(120만원)~2955달러(330만원) 등이다. 현대자동차도 지난 6월 미국에서 월 279달러(30만원)부터 시작하는 상품을 내놨다.

경제학자들은 구독경제의 확산 현상을 ‘효용이론’으로 설명한다. 제한된 자원과 비용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는 얘기다. 제러미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에서 예측했듯이 ‘소유’의 시대를 넘어 ‘접속’과 ‘이용’의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다만 ‘구독경제’라는 번역 용어는 매우 어색하다.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은 구독(購讀·사서 읽음)뿐만 아니라 ‘(정기)예약’ ‘회비’ ‘사용’ 등을 뜻하므로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이용경제’나 ‘정액(定額)경제’가 낫지 않을까 싶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