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 기자의 한반도 정세분석]임종석 비서실장의 '페북 소회'가 오해를 사는 이유

입력 2018-09-04 15:40
수정 2018-09-04 15:40


(박동휘 정치부 기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난 3일 페이스북 글이 화제다. 남북 관계 개선으로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의 교착을 돌파하겠다는 간절함과 의지가 절절히 담겨 있어 많은 이들의 입에 올랐다. 시점도 미묘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두 번째 대북특사단 방북(5일)을 얼마 안 남긴 시점에서 올린 것이어서 ‘왜’라는 의문을 낳고 있다.

임 실장의 ‘페북 소회’는 지난 5월27일에도 회자가 됐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일(5·26)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극비리에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에 올린 글이었다. 당시 임 실장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세상에서 저를 가장 좋아해 주는 ‘마고(애완견)’ 목욕시키고 낮잠이나 실컷 자야겠다”고 말했다. 미·북 정상회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남북 정상의 ‘깜짝 만남’을 통해 비핵화 협상의 첫 테이블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과 안도감이 글 속에 가득했다.

‘5월의 페북’이 일종의 감상적인 후기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9월의 페북’은 선제적이고, 정치적인 내용들로 상당히 채워졌다. 대북 특사단의 방북을 앞두고 나온 데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동의없이 시대사적 전환을 이룬다는 건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는 식의 논란이 예상되는 문구들이 꽤 많다. 임 실장은 ‘간절함’, ‘무거운 짐’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현재 비핵화 협상 국면이 녹록지 않은 상황임을 시사했다. “스스로 새로운 조건과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간절함을 안고 간다”, “결국 내일을 바꾸는 건 우리 자신의 간절한 목표와 준비된 능력임을 새삼 깨우치는 시간”이라는 표현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임 실장의 페북 발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 현 정부로 이어져 오는, 북한 비핵화 문제를 바라보는 ‘자주파’의 시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임동원,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주도했던 ‘자주파’의 요체는 두 가지다. 미국과 북한은 아직 전쟁상태고, 북한은 약소국이라는 시각이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핵무기를 보유한 세계 제1의 강대국과 정전 상태에 있는 북한에 핵과 장거리탄도미사일을 먼저 폐기·불능화해야 경제적인 혜택 및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란 선물을 주겠다는 관점은 ‘자주파’의 시각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정책이다. 북한과 김정은 체제에 있어 이 같은 협상방식은 전쟁에 대한 패배이자, 굴욕적 외교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선 북한의 혈맹인 중국도 일관되게 동의해왔다. 종전선언을 통한 군사적 대치 상황을 우선 없애야 북한이 비핵화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 검증이 없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ICBM 발사시험장을 폭파·폐쇄한 것은 북한으로선 미국에 대한 호의로서 할말큼 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배경이다.

그렇다면 임 실장은 왜 ‘자주파’의 신념을 대북 특사단의 방북을 앞둔 시점에 강조했을까. 이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그가 직접 설명하지 않았으니 모두가 ‘추측의 영역’일 뿐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문 정부의 한반도 평화 노력에 초석을 놨던 장본인으로서의 소회 이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임 실장의 발언이 의도치 않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가 미국을 향해 ‘전략적 인내’를 주문한 것은 자칫 트럼프 행정부의 오해를 살 수도 있는 표현이다. ‘전략적 인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상징하는 단어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선 ‘ABO(All But Obama, 오바마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불문율이 됐을 정도로 반(反) 오바마 정서가 강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백악관을 자극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방북을 앞둔 대북 특사단에게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지난 3월에 이어 이번 2차 특사단에서도 수석단장을 맡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외교부 공무원 출신으로 미국 대사관 공사 등을 지낸 ‘워싱턴 스쿨’의 대표 주자다. 미·북 비핵화 협상의 중재 역할이 정 실장의 주요 임무다. 이번 방북길에 그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등 북한의 ‘셀프’ 비핵화 조치와 관련해 좀 더 진전된 안을 김정은에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판문점 선언 이행 등 남북 경협의 진전 방안과 함께 미국의 요청도 받아들여야한다는 어려운 설득을 해야 할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의 대북 정책은 교수 및 선거캠프 출신으로 구성된 ‘자주파’와 외교부 중심의 ‘동맹파’ 간 갈등으로 점철됐다. 당시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속칭 ‘배포(gut)’가 있는 관료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현재 문 정부의 청와대는 대북 정책에 있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임 실장의 ‘페북 소회’에 대한 오해가 오해로만 그치길 바란다. (끝) /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