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후 기자의 입맛 (1) 현미녹차 30년
[ 김재후 기자 ] 현미녹차는 1988년 세상에 나왔다. 동서식품이 만들었다. 녹차에 현미를 섞었다. 다른 나라에선 차(茶)와 곡물을 섞어 우려 마시는 습관이 거의 없다. 일본만 비슷한 제품이 조금씩 팔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현미녹차는 왜 나오게 됐을까. 한국 소비자들은 차 시장 초창기에 쓴맛이 나는 차를 돈 주고 사서 마신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이 부분을 고민한 당시 동서식품 연구원이 쓴맛을 중화하기 위해 구수한 맛을 찾다가 누룽지를 떠올렸고, 그게 현미로 이어져 개발됐다”고 설명했다.
관세가 현미녹차를 탄생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1980년대 정부는 국산 차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녹차의 수입 관세율을 60%로 적용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본관세율은 1984년 50%로 조정된 뒤 이후 조금씩 낮아져 현재 40%”라고 했다. 기본관세율만 그렇고 수입하면 513.6%까지 관세율이 올라간다. 관세청 관계자는 “기본 세율을 적용받으려면 정부 추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관세율은 국산 녹차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산 녹차 가격이 관세가 부과된 수입 녹차 수준까지 맞춰진 것이다. 1989년 현미가 들어있지 않은 설녹차(50g)의 가격은 3000원이었다.
한국은행 물가조사시스템에 따라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8800원 정도다. 지금의 현미녹차(225g) 가격(7000원 안팎)보다 양이 훨씬 적은데 더 비싸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현미를 섞으면 가격을 더 낮출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동서 현미녹차의 현미와 녹차 비율은 7 대 3이다.
현미녹차는 이렇게 탄생한 뒤 정부 정책 효과를 등에 업고 시장에 자리 잡았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무렵 정부는 국산 차 시장을 부흥하기 위해 국산 차를 원료로 차를 만들면 특별소비세를 면제해줬다. 자동판매기에도 국산 차를 반드시 넣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당시 자판기에 율무차가 들어가게 된 이유다. 식품회사들이 국산 차를 제조해 적극적으로 팔기 시작하면서 현미녹차 시장도 커졌다.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현미녹차는 고소한 맛을 무기로 매년 꾸준히 팔리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현미녹차는 183억원어치 판매됐다. 동서 제품이 이 중 82%를 차지했다. 현미녹차 수요는 절반 이상이 손님 접대가 많은 사무실용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생활경제부 차장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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