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에서 조종자로… 본색 드러낸 AI의 공포

입력 2018-09-02 18:18
리뷰 - 영화 '업그레이드'


[ 유재혁 기자 ]
그레이(로건 마셜 그린 분)는 자신을 살인 혐의로 체포하려는 경찰을 순식간에 때려눕힌다. 그리고 총으로 그 경찰을 쏘려는 순간, 또 다른 자아가 내면에서 격렬하게 저항한다. 빠른 몸동작으로 경찰을 제압하고 죽이려 한 자아는 몸속에 이식한 첨단 인공지능 ‘스템’이고, 반발하는 또 다른 자아는 그레이의 진짜 인격이다. 그레이는 괴한의 피습으로 아내를 잃고 자신은 전신마비가 된 뒤 스템을 이식해 소생했다. 경찰은 보복 살인을 자행하는 그레이를 체포하려는 것이다. 그레이는 과연 경찰을 향해 총을 쏠 것인가.

오는 6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SF 액션 ‘업그레이드’(리 워넬 감독)는 인간을 조종하는 첨단기술의 공포를 흥미롭게 펼쳐낸다. 기발한 상상으로 히트한 공포 스릴러 ‘겟 아웃’과 ‘23아이덴티티’ 등을 제작한 블룸하우스의 신작이다.

영화는 인간과 컴퓨터,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상 간 차이를 선명하게 비교한다. 그레이는 원래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첨단기술을 싫어하면서 수동식 옛날 자동차들을 수리해주는 정비공이다. 반면 나노테크놀로지와 신경칩을 혼합해 만든 디지털기기 스템은 인간의 두뇌뿐 아니라 육체적 능력까지 업그레이드해준다. 천재적인 상황 분석과 무술 달인처럼 빠르고 강력한 몸놀림으로 적들을 일격에 쓰러뜨린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의식이 결여돼 살인을 서슴지 않는다. 스템은 원래 인간의 명령을 따르도록 설계됐지만 어느 순간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가 된다.

스템을 이식한 그레이는 두 가지 인격을 소유한 ‘듀얼 캐릭터’다. 자신의 고유한 아날로그적 성향과 스템의 디지털 세상이 혼재한다. 그레이 속의 인간과 기계는 서로 협력하다 싸우게 된다. 그레이는 복수의 쾌감과 함께 살인의 죄책감으로 갈등한다. 스템에 몸을 맡긴 그레이의 액션 동작은 기계처럼 움직인다. 얼굴 표정과 몸동작이 따로 노는 액션이 신선하다.

첨단기술을 입힌 인간의 다양한 모습도 볼거리다. 악당의 손가락이 총구로 변하고 눈동자는 초고성능 카메라처럼 정교하다. 인공지능의 유머는 덤이다. 기계적인 화법의 스템과 일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그레이가 서로 대화하고 싸우고 반목하는 장면들은 웃음을 준다.

첨단 기계의 한계도 짚어낸다. 드론을 많이 띄워 감시해도 그것을 피하는 범죄자의 대응책은 진화한다. 완벽해 보이는 디지털 자율주행 자동차가 해킹당하면 속수무책이다. 차라리 해킹이 불가능한 수동식 옛날 자동차가 안전하다. 영화는 첨단기계가 지배하는 미래 세상에 대한 또 하나의 보고서이자 경고라 할 수 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