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정책이 계속된다면 원자력 전문 인력들이 대거 탈출해 결국 국내 학계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47년의 원자력 연구 인생을 마치고 31일 정년퇴임하는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사진)는 “원자력 생태계가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지만 산업과 교육을 일구는 데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며 이 같이 지적했다. 그는 “에너지 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중국은 대학과 국책 연구소을 중심으로 한국의 우수 인재 영입에 혈안이 돼 있다”며 “탈원전 정책으로 새롭게 연구를 시작하는 제자들이 점차 줄어들면 교수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올해 하반기 2학년 진학 예정자 가운데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을 선택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황 교수는 “탈원전 이후 불투명한 산업의 미래에 학생들의 진로 고민이 많아진 게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아직 정부가 원전 수출만큼은 계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1971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에 입학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해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해 왔다. 동시에 학계, 원전 관련 기관, 산업계, 언론계, 학생들과 함께 만든 원전수출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을 맡는 등 상아탑에 머무르지 않는 ‘행동파’ 교수로 자리매김했다.
황 교수는 “환경단체들이 안전성 논란으로 국내에 짓지 않는 원전을 해외에 수출할 수 없다며 반대 집회를 여는 모습을 보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원전수출국민행동본부를 결성했다”며 “지난 4월 광화문에서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를 열고 100만명 서명운동을 펼치는 등 원전에 대한 과도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 교수는 정년 퇴임 이후에도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세계원전수명관리학회 회장 등을 지냈는데 최근 1년 동안 국내 이슈로 해외 활동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앞으로 사용후핵연료 소멸 기술 개발, 한미 원자력 협력 증진 등 국제 원자력계에 산적한 과제들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교수는 학생들에게 “원전 기술을 꾸준히 갈고닦아 한국이 에너지 수출 대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교훈을 가슴 속 깊은 곳에 품고 미래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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