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주기 아이돌 시대에, 20년 활동한 아이돌 ‘신화’ 비결은

입력 2018-08-30 17:15
수정 2018-08-30 17:18


(은정진 문화부 기자) 국내 아이돌의 생존주기는 평균 7년입니다. 이들의 표준 계약기간이 7년이기 때문입니다. 7년 후 같은 이름으로 계속 활동하거나 원년 멤버 그대로 남아있는 아이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해체 후 개별 활동을 합니다.

국내 최정상 여성 아이돌 그룹인 소녀시대는 지난 2007년 싱글앨범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했습니다. 정확히 7년뒤인 2014년 제시카의 탈퇴로 9인조에서 8인조 그룹이 됐는데요. 이후 태연, 써니, 효연, 유리, 윤아는 원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와 재계약을 했고 티파니, 수영, 서현은 새 소속사로 둥지를 틀었습니다. 소속사가 달라도 그룹 활동은 같이하자고 했지만 빛바랜 약속이 됐습니다. SM 소속 5명은 ‘Oh!GG’라는 소녀시대 새 유닛으로 다음달부터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올해 초 걸그룹 티아라도 전속계약 만료로 사라졌고 카라, 포미닛, 레인보우, 투애니원, 원더걸스, 미쓰에이 등 쟁쟁한 걸그룹들도 마의 7년을 넘지 못하고 모두 해체했습니다. 표준계약 기간인 ‘7년 징크스’를 넘어 계속 활동하기란 이처럼 쉽지 않은데요.

이런 가운데 올해로 데뷔 20년차를 맞이한 아이돌 그룹이 있습니다. 바로 ‘신화’입니다. 이름 그대로 한국 아이돌 그룹의 ‘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1998년 ‘해결사’로 데뷔한 이들은 20주년을 맞아 새 앨범을 내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곤 활동을 중단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는데요. 같은 시대에 데뷔했던 H.O.T와 젝스키스 등이 일찌감치 해체한 것과는 대비됩니다.

언뜻보면 원로가수 취급을 받을만 한데도 신화는 현재 활동중인 아이돌들의 ‘롤모델’입니다. 빅뱅은 데뷔 3년째인 2008년 1월 “우리 롤모델은 신화”라고 밝혔는데요. 당시는 신화 데뷔 10주년이었습니다. 소녀시대도 “신화처럼 멤버들이 개인활동을 하더라도 모여서 콘서트도 하고 앨범을 내면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평균 40살에 가까운 최장수 아이돌이 어떻게 수많은 후배 아이돌들의 롤모델이 됐을까요. 이들의 지난 20년 생존비법을 듣고 싶어 지난 28일 그들의 20주년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 달려갔습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간담회에서 이들로부터 느낄 수 있었던 건 ‘돈을 뛰어넘는 끈끈한 관계’와 ‘확실한 정체성’이었습니다. 신화가 이날 발표한 앨범 이름은 ‘하트(Heart)’였는데요. 이에 대해 맴버 신혜성은 “멈추지 않는 심장처럼 신화는 계속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장에서 처음 들은 이번 타이틀곡 ‘키스미 라이크 댓(Kiss me like that)’은 ‘원조 칼군무 그룹’으로 알려질 정도로 강하고 남성미 넘쳤던 그동안의 신화 음악과 달리 통기타 반주의 잔잔하면서도 리듬감 넘치는 박자의 곡이었습니다. 뮤직비디오 컨셉트 역시 현란한 무대 조명과 화려한 카메라 효과, 칼군무를 과감히 뺏습니다. 팀에서 안무를 맡고 있는 이민우는 “신화는 퍼포먼스를 빼놓을수 없다”며 “신화만이 해석하고 소화할수 있는 힘을 덜쓰면서 절제된 퍼포먼스를 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한 기자는 “신화는 다른 그룹들과 달리 추억팔이를 하지 않는게 장수의 비결”이라고 꼽았습니다. 예전 아이돌들이 20년전 불렀던 노래로 최근 다시 등장해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적 성향과는 달리 신화는 매번 다른 느낌의 새 음악을 가지고 나온다는 건데요. 이에 대해 리더 에릭은 “처음 이수만 SM 회장이 만든 저희 모습은 트렌디한 댄스 음악을 하는 퍼포먼스 그룹이었다”며 “그 정체성을 놓치 않고 매년 지금 나이에 걸맞는 우리 음악과 안무를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역시 6년차였던 2003년 SM을 나와 GOOD EMG에 새 둥지를 텄습니다. 소속사만 옮겼을 뿐 단 한명의 이탈자 없이 이름도 그대로 ‘신화’를 사용했구요. 일각에선 신화가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를 나와 과연 홀로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소속사를 나와 만든 7집 타이틀곡 ‘브랜드 뉴(Brand New)’로 그 해 가요대상을 타며 이런 우려를 보기좋게 날렸는데요.

멤버 각자가 생각하는 신화의 장수 비결은 뭘까요? 1981년생인 앤디와 1980년생인 전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공교롭게도 1979년 친구들입니다. 앤디는 “자기 것을 고집하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 양보를 많이한다”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초심을 잊지 않고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친구처럼, 식구처럼 지내왔다”고 털어놨습니다. 김동완은 “후배들이 많이 와해되고 각종 갈등으로 연예인을 그만두기도 한다”며 “각자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다른건데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을 서로 이해해주는 관계가 우리는 오랫동안 지속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심지어 신화 멤버들은 공백기간을 줄이기 위해 비슷한 기간에 순차적으로 군복무를 마쳤는데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후배 아이돌 그룹 빅뱅도 모두 시기를 맞춰 현재 군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김동완은 “우리가 신화에 집중하는 이유는 오랜시간 흘러오면서 남은건 우리가 더 잘되길 바라는 팬들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언젠가 헤어지겠지’라는 시선을 보기좋게 꺾을 수 있는 고집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신혜성은 “그냥 20년동안 장수한 그룹이라고만 비춰지면 속상하다”며 “이에 덧붙여 20년동안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세련된 음악을 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며 일본의 최장수 국민그룹 ‘스맙(SMAP)’이 떠올랐습니다. 신화보다 7년 앞선 1991년 데뷔한 이들은 활동 25년 만인 2016년 해체했습니다. 20주년을 맞이한 신화 멤버들이 10년후 50대가 되서도 30년 된 아시아 최장수 아이돌 그룹이란 타이틀로 무대에 설 날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신화를 보며 연예계를 넘어 우리 경제계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쉽게 나타났다 20년은 커녕 5년도 안돼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단명(短命) 기업이 많은 우리 현실속에서 ‘확실한 정체성’과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진 ‘장수기업’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끝) /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