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IT과학부 기자) 정부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표적 걸림돌로 꼽혀온 승차공유 규제 개혁에 나서자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성명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달 들어 스타트업과 택시업계가 규제 혁신과 관련해 격한 언어로 찬·반 성명을 낸 데 이어 지금까지 단체행동에 나서지 않았던 카풀 운전자들이 가세했는데요.
카풀 운전자 1670명이 가입된 단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카풀러(Carpooler)’는 지난 25일 택시업계를 강하게 규탄하는 성명서를 언론에 배포했습니다. 국내에 카풀 운전자로 활동하는 사람은 약 3만~5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이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카풀러는 택시업계가 최근 신문광고에서 “카풀 운전자는 면허제가 아니어서 성범죄자 등 범법자가 채용될 수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카풀에 참여하는 평범한 시민들을 왜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붙이느냐는 겁니다.
카풀러 측은 “면허제로 운영되고 범죄이력 조회도 가능한 택시업계는 과연 성범죄의 안전지대였느냐”고 반박했습니다. 지난해 도로교통안전공단이 적발한 전과자 택시기사 862명 중 51%가 성범죄 전과자였다는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죠.
또 택시업계가 “카풀 운전자 200만명이 활동하면 택시시장의 59%를 잠식해 하루 178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다”고 주장한 것은 ‘상식을 벗어난 수치’라고 맞받았습니다. 이들은 “택시업계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승차난을 국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카풀에 참여하고 있다”며 “숫자놀음으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고 산출 방식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카풀러는 “해외는 승차공유 시대로 진화하는데 한국은 택시의 기득권 울타리에 갇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택시업계가 국민이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없다면, 택시의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폄하하고 방해하는 이기적인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승차공유 규제 개혁이 지지부진한 사이 카풀 운전자들도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럭시 등 주요 승차공유업체에 운전자로 참여한 시민들이 대거 경찰조사를 받은 적이 있거든요.
앞서 이달 8일 스타트업 연합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정부가 우버식 승차공유에 대한 택시업계 반발을 핑계 삼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혁신성장 정책에 대한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지난 22일엔 전국택시노조 등 4개 택시 단체가 카풀 합법화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투쟁을 결의했습니다. 택시 단체들은 “카풀 문제는 택시산업을 말살하고 택시 종사자의 생존권을 침해한다”며 “카풀 합법화에 대한 어떤 논의도 거부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이해당사자 간의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해 승차공유 갈등을 풀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1년 넘도록 토론 자체가 무산되며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죠. 지금까진 스타트업과 택시단체 간의 대결 구도였는데 카풀 운전자까지 가세해 논쟁이 더 격해질 것 같습니다.
갈수록 거칠어지는 성명서 전쟁을 지켜보자니 해법 모색이 쉽지 않겠다는 우려가 듭니다. ‘한국의 우버’,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 (끝) /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