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방식까지 정해주나"…속 끓이는 금투업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금감원의 '블라인드 채용' 압박
금융투자협회 채용 모범규준
표면상 '자율'이지만 '반강제'
증권사·자산운용사 등은
직무 다양하고 높은 전문성 요구
"선발 인원도 많지 않은데
필기전형으로 뽑으라니…갑갑"
[ 조진형/노유정 기자 ]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앞두고 금융투자회사 사장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고용 대란 속에서 청년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 아니다. 기존 채용 방식을 대폭 바꾸라는 금융당국의 ‘무언의 압박’을 받고 있어서다. 금융투자협회는 채용 절차 모범규준을 마련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에 이어 금융투자회사도 채용 공정성을 높이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금융권 ‘어물쩍’ 확산
모범규준의 핵심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블라인드 채용’에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기업들이 흔히 사용하는 ‘블라인드 면접’과는 수준이 다르다. 입사 지원자의 ‘스펙’을 선발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 연령이나 출신지뿐 아니라 출신학교도 보지 않는다. 선발하는 직무에 연관성이 없다면 지원자들의 전공이나 학점도 모른 채 선발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종이나 남녀 차별을 막기 위한 블라인드 채용은 있어도 후천적 노력에 의해 쌓은 ‘스펙’을 배제하는 방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소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회자하는 학벌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에선 적극 활용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하반기 블라인드 채용을 공공기관 및 공무원 채용에 전격 도입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명문대 출신이나 일반대 출신이나,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이나 똑같은 조건, 똑같은 출발선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당장 시행하라”고 지시하면서다.
금감원은 은행권 채용 부정을 빌미로 블라인드 채용을 금융권 전역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6월 채용 절차 모범규준을 마련해 회원사에 배포했다. 채용 규모가 작지 않은 공공기관이나 은행 등은 각각 필기시험과 심층면접 등의 전형을 갖춰 블라인드 채용에 나서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공공성이 짙은 은행뿐 아니라 다른 금융회사도 정부가 인허가를 내줬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채용 방식 관여는 월권”
블라인드 채용은 구직자들의 스펙 경쟁을 줄이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는 자본시장의 특성과 전혀 맞지 않는 채용 방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증권사 사장은 “자본시장 인재까지 공공기관 직원처럼 블라인드 방식으로 뽑아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성과에 따라 보수를 받는 업계 특성을 지나치게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공공기관이나 은행과 비교하면 직무도 다양하고 높은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연봉도 높아 구직자 사이에 인기가 많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채용간담회에서 ‘자본시장 인재상’으로 “고객 신뢰는 물론이고 넓은 시야와 풍부한 지식, 미래를 꿈꾸는 창의성, 분명한 목표의식까지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 금융투자회사 인사 담당 임원은 “선발 인원이 많지 않아 블라인드 채용을 위한 필기 전형을 도입하기도 어렵다”며 “협회 모범규준이 마련되면 지키지 않을 수도 없고 갑갑하다”고 토로했다.
협회 모범규준은 표면상 ‘자율’이지만 사실상 ‘반강제’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채용 부정이 발생하면 형법으로 다루면 될 일”이라며 “금융당국이 사(私)기업의 채용 방식까지 관여하는 건 월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은 공정하게 구직자의 실력을 따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민간에선 자발적으로 도입하는 게 맞다”며 “업계 반발에도 강제로 도입하면 부작용만 키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 채용
출신학교·출신지·자격증·어학점수 등의 흔히 ‘스펙’이라고 불리는 요소를 보지 않고, 직무능력과 인성 등을 고려해 채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조진형/노유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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