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그대로인데… 재취업 비리 막겠다는 공정위

입력 2018-08-20 17:58
조직 쇄신안 발표

퇴직 예정자 '경력 세탁' 금지
재취업땐 10년간 이력 공시
현직과의 사적 만남도 막아

김상조 쇄신안 평가는 '싸늘'
"기업 생사여탈권 갖고 있는 한
재취업 관행 없애기 어려울 것"


[ 이태훈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퇴직 예정자를 5년간 비사건 부서에 근무하게 하는 ‘경력 세탁’ 관행을 없애기로 했다. 현직 직원과 퇴직자의 사적 접촉을 전면 금지하고, 퇴직자가 민간 기업에 재취업하면 10년간 이력을 공정위 홈페이지에 공시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담합이나 갑질 조사 등을 통해 기업 위에 군림해온 공정위 공무원들의 체질이 이 정도 쇄신안으로 개선될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재취업 이력 10년간 공시

공정위는 20일 퇴직자에 대한 재취업 알선 관행 타파를 골자로 한 ‘공정위 조직 쇄신 방안’을 발표했다. 공정위가 조직적으로 퇴직자 채용을 민간 기업에 강요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자 급하게 내놓은 자체 쇄신안이다.

공정위는 4급 이상 공무원은 원칙적으로 비사건 부서에 3회 이상 연속 발령하지 않고, 5년 이상 비사건 부서(파견 포함)에서 연속 근무하는 것도 금지하기로 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곳’에는 퇴직일로부터 3년간 취업할 수 없다. 공정위는 그동안 퇴직 예정자를 5년간 기획 정책 관리 등 비사건 부서에 배치해 공직자윤리법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줬다.

퇴직 후 재취업하는 직원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공정위는 민간 기업에 재취업한 퇴직자의 취업 이력을 퇴직일로부터 10년 동안 홈페이지에 공시한다. 다만 기존 퇴직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공정위는 현직 공정위 직원과 퇴직자의 사건 관련 사적 접촉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위반하면 직원은 중징계, 퇴직자는 공정위 출입금지 등의 불이익을 준다.

공정위 직원은 퇴직자나 기업·로펌의 공정거래 관계자가 함께 참여하는 모든 외부교육에도 참가할 수 없게 된다. 예컨대 공정경쟁연합회의 공정거래법 전문연구과정, 서울대의 공정거래법 연구과정이 그 대상이다. ‘로비 창구’ 의혹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이나 로펌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대가를 받고 하는 강의를 할 수 없게 된다.


◆비대해진 공정위 권한 놔두고…

공정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기아자동차 등 16개 기업에 압력을 넣어 2012년부터 작년까지 18명의 퇴직 공무원을 재취업시킨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정재찬 전 위원장과 김학현·신영선 전 부위원장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노대래·김동수 전 위원장과 지철호 현 부위원장 등 9명도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상조 위원장(사진)은 이날 쇄신안을 발표하며 세 번이나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는 “공정위 창설 이후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최대 위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공정위 자체 쇄신안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싸늘하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자는 “공정위가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계속 쥐고 있는 한 재취업 관행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官) 주도 성장에서 민간 주도 성장으로 바뀌며 권한의 대부분을 시장에 이양한 다른 경제부처들과 달리 공정위는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시장 규제력을 더욱 키워왔다. 담합 여부 조사라는 공정위 고유 권한 외에 일감 몰아주기와 갑질 조사까지 공정위의 주요 업무가 됐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김 위원장이 재벌개혁과 갑을 관계 개선을 강조하면서 공정위가 미치는 범위는 더 확대되는 추세”라며 “이 같은 분위기라면 기업으로선 ‘공정위 퇴직자를 고용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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