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국민연금 개편, 정치권에 휘둘리면 안 된다

입력 2018-08-20 09:00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국민연금 개편, 독립성·전문성·중립성 확보가 먼저다

국민연금의 운영 틀이 또 한 번 바뀔 모양이다. 5년 단위로 하게 돼 있는 ‘국민연금 재정추계’가 오는 17일 공개될 예정이다. 일차적 관심은 고갈 시점이 얼마나 앞당겨질 것인가다. 5년 전 추계에서 2060년으로 잡혔지만 최근 몇 년 새 나온 전망들을 보면 이보다 앞당겨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오로지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때문인지, 기금 운용 오류와 부실이 부채질한 건 아닌지 논란이 예상된다.

재정고갈 대책으로 거론되는 가입기간 연장, 수급(受給) 개시 연령 이연, 보험료 인상 등의 방안이 어떻게 결정될지도 주목된다. 조세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보험료까지 올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직장 부담분이 없는 지역가입자들 반발도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빗나간 정부 추계, 낮은 수익률, 정체되는 가입자 수 등에 대한 정부의 정확한 사과나 설명 없이 어물쩍 넘어가기가 쉽지 않게 됐다.

더 중요한 것은 다수 국민의 미래가 걸린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이다. 이번에 나올 재정 추계와 새 운영 방안은 몇 년짜리가 될 것인가. 이번에야말로 정부가 제대로 책임질 수 있는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다음 정권에, 나아가 미래 세대에 숙제를 넘기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러자면 국민연금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탈(脫)정치 장치’가 다각도로 강구돼야 한다. 연금제도와 기금 운용에서의 독립성·전문성·중립성 확보가 관건이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기업 경영 개입 수단이 될 수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논란 속에 도입해 ‘연금사회주의’ 우려를 키운 것은 이런 과제와는 거꾸로 간 것이다. 지난 5월 국민연금공단 이사회에 노조와 중소기업 대표는 들어가고 대기업 대표가 빠졌을 때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파행이 계속되면 가입자는 줄고 수익률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성은 단순히 산술적 재정추계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8월11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오래 유지된 기존의 시스템 잘 살려
국민연금 유지하는 게 현실적 대안
정치 논리 빼고 합리적 대책 고민해야

국민연금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수입’과 ‘지출’을 계산하면서 이 공적 부조시스템이 유지되도록 하는 ‘재정추계’를 5년마다 하도록 국민연금법에 정해져 있는데, 또 5년이 된 것이다.

2013년 재정추계를 발표할 때 정부는 2060년이면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 국회 입법조사처를 비롯해 많은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이 그 이전에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정부도 이런 분석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번 재정추계 발표에 앞서 고갈 시점이 많이 앞당겨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게 몇 년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무엇보다 차제에 국민연금의 성격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국민’과 ‘연금’이라는 용어 때문에 흔히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과 비슷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이 각각의 법에 정부(국가)가 지급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명시된 진짜 연금인 반면, 국민연금은 공적 부조 시스템일 뿐이다. 새로 법을 만들기 전까지는 어떤 법규에도 정부가 고갈된 국민연금에 지원해줄 근거가 없다. 그렇다고 이런 법을 만드는 것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렵다. 몇 차례 그런 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부결됐다.

결국 기존의 시스템을 잘 살려 국민연금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렇게 하자면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단기적 관점에 따른 정부나 국회의 정파적 이익에 악용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강하게 보장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으로 개별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고, 막대한 기금으로 정치성이 강한 정책을 펴면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도 지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급증하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는 바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전문성 강화다. 국민연금에는 지금 65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기금이 쌓여 있다. 아직은 징수(보험료 납입)가 많을 뿐 지출(연금 지급)이 적기 때문이다. 대략 2040년까지는 이 기금이 계속 늘어 2500조원으로 증가한다. 그 다음부터는 납부자는 줄어들고 수령자만 급속도로 늘어나 고갈이 된다. 이 막대한 기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기금의 고갈 시점이 몇 년씩 늦춰질 수도 있는데, 지금 몇 달째 기금운용 책임자가 공석이다.

국민연금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을 수립해 두지 않으면 모든 문제는 미래세대의 몫이 될 수 있다. 납부 기간과 방식, 납부 금액과 수령액의 점진적 조정 같은 방안도 있지만, 나라 경제의 구조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예를 들어 고용과 근로방식, 정년과 임금 제도 등을 전향적으로 개선하면 국민연금의 보험료 납부자나 납부기간은 늘어나고 수령자나 수령기간은 줄일 수 있어 기금 유지에 크게 도움이 된다. 어떤 경우든 철저히 정치적으로 독립된 전문가들에게 제도와 기금의 운용을 맡기는 것은 필수다. 젊은 세대들은 국민연금 폐지론까지 내놓는 판이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