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광 기자의 유통심리학 (10)
최대 할인율만 부각
'프라이밍 효과' 극대화한 아울렛의 판매 전략
[ 안재광 기자 ] ‘80~30% 세일.’
국내 한 아울렛을 지나다가 이런 문구를 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80% 세일’ 품목은 없었다. 매대에 걸린 옷은 대부분 정상가 대비 30% 할인이었다. 드물게 50% 할인 품목도 있었다. “80% 세일하는 게 어디 있느냐”고 직원에게 묻자 그 직원은 매장 귀퉁이를 가리켰다. 텅 비다시피 한 행거에는 옷이 단 세 벌 걸려 있었다. ‘속았다’는 생각과 ‘머리 좋네’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만약 ‘30~80% 세일’이라고 쇼윈도에 붙였으면 들어갔을까. 아마도 안 갔을 것 같다. ‘80’이란 숫자에 현혹된 것이다.
아울렛은 소비자를 ‘유혹’하는 데 귀재다. 매장 입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일폭이 가장 큰 상품을 배치하는 것도 그렇다. 물건 상태가 좋지 않고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도 아니어서 잘 팔리진 않지만 ‘명당자리’에 떡하니 있다. ‘싸게 판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다. 이런 판매기법은 실제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아울렛 매출의 대부분이 할인율 50% 미만 상품에서 나오는데도, 사람들은 매우 싸게 구입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인지 심리학에선 이를 ‘점화 효과(Priming effect)’란 용어로 설명한다. 시각적으로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제시된 정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실험으로 증명했다. ‘1×2×3×4×5×6×7×8’의 근삿값을 말해 보라고 하자 평균 ‘512’가 나왔다. 숫자를 반대로 제시해 ‘8×7×6×5×4×3×2×1’로 하자 그 값은 2250으로 4배나 높게 나왔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처음 나오는 숫자를 사람들이 훨씬 더 중요한 정보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곱셈의 답은 같다.(정답은 4만320이다.)
‘싸다’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축한 덕분에 아울렛에선 할인율이 0%인 상품도 잘 팔린다. 아울렛 전용 기획상품이다. 이월상품 재고가 달리자 패션업체들이 아울렛에서만 판매하는 저렴한 상품을 별도로 내놓고 있다. 별도 할인 없이 ‘정가’를 받는 이유다.
그러니 아울렛에서도 ‘현명한 소비’를 하려면 잘 따져봐야 한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상품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어렵지도 않다. 쇼핑 고수는 직원과 흥정도 잘한다. 말만 잘하면 할인을 더 해주거나, 싸게 구입하는 노하우를 귀띔해주기도 한다.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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