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팍스 아메리카나
(1) '절대 패권' 움켜쥐는 미국
트럼프의 보호무역 강화
취임 3일 만에 TPP탈퇴 선언
中·러·캐나다 등에 관세 폭탄
우방인 EU에도 "통상에선 敵"
안보에도 비용 강조
NATO에 "당장 방위비 더 내라"
韓엔 "주한미군 분담금 올려라"
내부서도 '美 우선주의' 비판
"서방세계 결속 뿌리째 파헤쳐"
[ 주용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부터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 슬로건을 앞세웠다.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면 동맹이든, 적이든 상관없이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일방주의 외교·안보·경제정책 노선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 바탕엔 ‘힘의 논리’가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거침없이 실행에 옮기고 있다.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 정책을 쓰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1월23일 취임 3일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캐나다·멕시코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NAFTA에 대해선 “사상 최악의 무역 거래”라고 했고, 한·미 FTA에 대해선 “끔찍한 딜”이라고 날을 세웠다.
지난 3월엔 중국, 러시아 등을 상대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 들었다. 6월엔 이 조치를 유럽연합(EU)과 캐나다로 확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최대 동맹인 EU에 대해 “통상에선 우리의 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을 표적 삼아 사상 최대의 무역전쟁도 벌이고 있다. 지난달 6일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25% 관세 부과를 시작했다. 오는 23일부터 추가로 16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25% 관세를 매길 예정이다. 중국이 “똑같은 강도로 보복하겠다”고 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추가로 200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주도로 세운 세계무역기구(WTO)도 흔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일 “WTO는 미국을 매우 나쁘게 대우하고 있다”며 탈퇴 위협을 가했다.
◆‘안보 원하면 돈 내라’
외교안보 정책도 과거 미국 행정부와는 결이 다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안보문제에서도 동맹관계보다 ‘돈(비용)’을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직후 트위터에 “(NATO 회원국은) 지금 당장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썼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한국을 압박했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한·미 군사훈련도 “비용 부담이 크다”며 전격적으로 중단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선 동맹국 반대도 신경 쓰지 않는다. 지난 5월 이란 핵협정 탈퇴와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때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우방국이 반대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대로 강행했다. 66년 동맹관계인 터키에 대해선 미국인 목사 구금 문제로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지난 10일 미국이 터키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두 배로 인상하기로 하자 미 달러화 대비 터키 리라화 가치가 하루 만에 24% 폭락했다.
대(對)중국 정책은 견제 일변도다. 중국의 경제적·군사적·외교적 패권 도전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 주도의 ‘팍스 아메리카나’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미국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수정될 조짐은 없다. 스튜어트 패트릭 외교관계위원회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이 7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서방세계의 결속력을 단기간에 뿌리째 파헤쳤다”고 말했다.
트럼프 주도의 신(新)세계질서인 ‘네오 팍스 아메리카나(Neo-Pax Americana)’는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한·미 FTA를 미국에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한 데 이어 지난달 EU로부터도 “미국산 콩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확대하고 관세 인하에 힘쓰겠다”는 사실상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