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우즈 부활시킨 '고려 잔디'

입력 2018-08-14 17:55
김선태 논설위원


‘타이거 우즈의 부활’이 요즘 세계 골프계의 핫 뉴스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내 앞날을 나도 알 수 없다”던 그가 지난 주말 열린 미국 프로골프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PGA챔피언십에서 우즈가 빼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골프장 잔디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고 한다.

이번 경기가 열린 미국 미주리주 벨러리브 골프장의 페어웨이 잔디는 조이시아(Zoysia)라는 종(種)이다. 미국 언론들은 “매우 촘촘하고 양탄자와 같은 이 잔디는 마치 티에 꽂아 놓고 공을 치는 느낌을 준다. 잔디가 좋기 때문에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맘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잔디가 미국에 더 많았다면 타이거 우즈가 더 많이 우승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말도 전했다.

잔디 상태가 좋으면 다른 선수들도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크지만, 티샷 불안이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우즈에게 조이시아 잔디는 특히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티샷 실수를 정교한 아이언 샷과 어프로치 등으로 만회하는 데 이 잔디가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잔디 덕분에 40대에 접어든 우즈가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힘보다 기량으로 승부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화제를 모은 조이시아 잔디의 ‘고향’이 한국이란다. 한국의 들잔디를 일본 농학자가 일제강점기에 ‘조이시아 자포니카(Zoysia Japonica)’라는 학명으로 발표한 뒤 세계에 퍼지게 됐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 잔디를 ‘고려 잔디’로 부른다. 미국 텍사스에서 품종을 개량,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코스에 심은 데 이어 미국 골프장들에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개량된 조이시아 잔디는 국내에서는 아직 보기 어렵다.

‘조이시아’는 한지형과 난지형 잔디의 장점을 동시에 지닌 잔디로 물 사용량도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원래 한국 들잔디는 생장 속도가 느리고 추워지면 금세 누렇게 변하지만, 조이시아는 품종 개량으로 이런 단점도 상당 부분 보완했다.

조이시아처럼 해외로 나가 유명해진 토종 식물엔 ‘미스킴 라일락’도 있다. 1947년 미국 식물 채집가가 북한산에서 수수꽃다리 씨를 채취해 미국으로 가져가 종자를 개량한 것이다. 향기가 진하고 병충해에 강해 가장 인기 있는 라일락 품종이 됐다. 세계적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로 가장 인기 있는 구상나무도 원산지가 한국이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지만, 식물 중에도 ‘자랑스러운 우리 것’이 많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