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김지은 성폭력 무죄=미투에 대한 사형선고? 홍대 몰카범과 다른 이유

입력 2018-08-14 15:34
수정 2018-08-14 15:53
재판부 "위력행사 정황없다" 무죄 판결
'미투=무고' 프레임 위축 불가피
재판은 증거 중심
홍대 몰카범 징역형과는 기준 달라




자유한국당은 수행비서 김지은 씨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미투운동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사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신보라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는 사실상 어떠한 미투도 법적인 힘을 가질 수 없다고 사법부가 선언한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신 원내대변인은 "이것이 사법부를 장악한 문재인 정부의 미투운동에 대한 대답이자 결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판결은 이어지는 모든 미투 관련 재판의 시금석이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국민들 특히 여전히 숨죽이고 있는 피해여성들의 눈과 귀가 집중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법부는 피해자의 진술이나 증언만으로는 현재 우리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 하에서 성폭력 범죄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며 "수많은 여성들이 무죄 판결을 두고 ‘성범죄 피해를 고발해도 여성들만 다치는 현실을 알려준 것’, ‘여성을 위한 법은 없다’고 외치며 절망하고 있다.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사회적 분위기와 국민감정과 완전히 괴리된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의 주장과 결을 같이하는 고소인 김지은 씨 또한 입장문을 냈다.

김 씨는 변호인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면서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됐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굳건히 살아서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이라며 "권력자의 권력형 성폭력이 법에 따라 정당하게 심판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전날 홍대 미대 누드모델 몰카 촬영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의자가 초범임에도 상대적으로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며 사법부가 안 전 지사에게는 성 차별적인 잣대를 들이댄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페미니즘 운동을 벌이는 이들은 '홍대 미대 몰카 사건'의 범인인 여성 모델이 초범에도 불구하고 징역 10개월 실형을 받은 반면 '미투' 폭로로 법정에 선 안 전 지사에게는 무죄가 내려진 것은 최근 격화하고 있는 이른바 '여성 시위'에 기름을 들이부은 모양새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그에게 잘못이 없다는 이유가 아니라 유죄로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조기현 중앙헌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판결에 앞서 무죄를 예상하면서 "위력에 의한 간음이 성립하려면 폭행이나 협박은 없더라도 원치않는 관계였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면서 "안 전 지사는 김 씨와 불륜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김씨가 여러 동료들과 주고받은 문자 등 정황상 원치 않는 관계를 상사이기 때문에 억지로 맺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관측했다.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데는 김 씨가 그동안 동료들과 주고받았던 메시지가 주효했다.

안 전 지사 변호인 측은 "범행 전후 피해자는 업무를 잘 수행했으며 최초 간음 피해를 입은 후 안 전 지사와 주고 받은 메시지 내용은 '지사님이 고생많으세요' '쉬세요' 등으로 위협적인 대화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김 씨와 친분이 두터운 동료는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 씨와 주고받은 온라인 메신저 대화의 의미 등을 증언했다.

그는 김 씨가 지난해 7월 러시아, 9월 스위스 등 안 전 지사의 외국 출장 수행 도중 자신에게 보낸 문자에서 'ㅋㅋㅋㅋㅋ' 등으로 웃음을 표현한 것에 대해 "김 씨는 기분이 좋을 때 히읗과 키읔을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가 스위스 출장 마치고 귀국한 뒤 ‘몰라요. 헤어짐요. 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차피 서로 안될 사람인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대상이 누군지는 김씨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행위와 상반되는 행동이라고 판단될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이날 안 전 지사 사건의 선고공판에서 "간음·추행 때 위력행사 정황이 없다"면서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와 관련해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권을 가진 것을 보면 위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개별 공소사실을 두고는 전반적인 사정을 고려할 때 김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에서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나 의문점이 많다"며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얼어붙은 해리상태에 빠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무죄의 이유를 들었다.

이어 "검찰의 공소사실의 뒷받침이 부족하다. 현재 우리 성폭력범죄 처벌 체계 하에서는 이런 것만으로 성폭력 범죄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홍대 몰카범 안모(25)씨의 재판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이은희 판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구속기소 된 데 대해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이 판사는 “안씨는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인터넷과 남성혐오 사이트에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게 사진을 게재해 피해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심각한 피해를 줬다”며 “피해자가 사회적 고립감·우울감 등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고 앞으로도 누드모델로서 직업 활동 수행이 어려워 보이는 등 피해가 상당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안씨는 지난 5월 홍익대 회화과 누드크로키 수업에 참여한 남성모델의 나체를 몰래 촬영하고, 이 사진을 극단주의 여성 커뮤니티 ‘워마드’에 게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안씨는 피해자와의 합의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져 실형 사유에 해당했다.

재판 과정에서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는 재판부는 명확한 물증이나 증거가 있느냐 하는 부분들을 면밀히 봤을 가능성이 있다.

증거가 중심이 돼야 하는 재판에서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 뿐인 안 전 지사 미투 운동과 몰카사진을 다수가 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사건과 동일시 할 수 없는 별개의 사건이다.

안 전 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이 논란이 되고 있는 영화인 김기덕 조재현 등에 대한 성폭력 폭로에도 영향을 줄 수 없는 이유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