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추격에 치중했던 국가R&D
사람·사회 중심 창의확산에 주력
파괴적 혁신 역량 축적해 나갈 것"
유영민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마시멜로 챌린지’란 게임이 있다. 스파게티면 20개, 테이프, 실, 마시멜로를 사용해 탑을 높게 쌓는 팀이 이기는 방식이다. 세계 곳곳에서 디자이너, 건축가, 경영대학원 졸업자,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여러 집단을 대상으로 게임을 진행했는데, 흥미롭게도 어린이들이 가장 높은 탑을 쌓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어린이들의 성공 비결은 실행과 실패, 보완이었다. 어른들이 탑을 쌓는 완벽한 방법을 찾기 위해 토론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은 일단 쌓기를 시도하고 실패를 반복하면서 성공의 초기모델을 얻은 후 계속적인 보완을 통해 탑을 쌓았다는 것이다. 이 챌린지의 교훈은 연구개발(R&D) 혁신이란 국가적 과제 해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달 26일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국가기술혁신체계 고도화를 위한 국가R&D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R&D 혁신방안은 질적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우리나라가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국가R&D 시스템 전반을 ‘사람과 사회’ 중심으로 고도화하는 것을 큰 방향으로 삼고 있는데, 구체적인 전략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간 우리나라의 R&D가 특정 기술을 개발해서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는 방식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중장기적으로 국가 전반의 혁신역량을 축적하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우수한 학생들이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자 또는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는 혁신적 창업가로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연구환경과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둘째, 저(低)위험 저실패 위주의 연구에서 벗어나 이른바 ‘파괴적 혁신’을 가능케 하는 고위험 혁신형 도전적 연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실패가 용인되는 R&D 시스템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셋째, 대학, 연구소, 기업, 지역 등 혁신주체의 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높여나가고자 한다. 대학의 인재 양성 기능을 강화하고, 공공연구소들이 자율과 책임의 원칙하에 세계적 수준의 연구역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혁신형 벤처·중소기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지역이 장기적으로 혁신역량을 축적하도록 지원체계도 혁신하고자 한다.
넷째, 개발된 기술이 실험실에 머무르지 않고 경제·사회적으로 널리 활용되도록 혁신성장동력 등 전략분야를 중심으로 규제를 선제적으로 개선하고 산·학·연 간 협업을 강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성 위주의 연구개발에서 벗어나 미세먼지, 치매, 안전 등 국민이 일상에서 R&D 성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국민생활(사회)문제’ 관련 기술개발도 확대할 계획이다.
국가R&D 혁신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1960년대 후반 국가연구 개발체제가 확립되면서 큰 변화 없이 지속돼 온 모방형 R&D 시스템이 자율과 창의, 도전과 융합 등이 중시되는 현재의 혁신환경에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문제의식은 계속해서 있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현장의 근본적 혁신을 끌어내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정부는 이 같은 교훈을 인식하고, R&D 혁신을 강력하게 추진할 ‘과학기술 혁신본부’를 복원하는 한편, 혁신본부의 R&D 관련 권한을 강화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국가 R&D 혁신의 큰 틀과 방향을 정립한 것이다.
이제는 실행과 보완이다. R&D 혁신이 계획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손에 잡히는 변화를 만들어 내도록, 이번에는 빠르게 실행하고,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보완할 것이다. ‘작은 실패가 모여 큰 성공을 만든다’는 믿음하에 ‘마시멜로 챌린지’에 도전하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시행 착오가 있더라도 R&D 혁신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보완해 나가고자 한다. 그리하여 앞으로 50년, 100년간 이어질 수 있는 ‘사람과 사회’ 중심의 R&D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