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시장 '흔들'
에르도안 "터키 노린 음모"
리라화 가치 한때 사상 최저
기준금리 인상할지 주목
[ 추가영 기자 ]
지난주 리라화 가치가 급락(환율 급등)한 뒤 터키 금융위기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13일 오전에도 홍콩·싱가포르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리라화 환율은 한때 역대 최고치인 7.2362리라까지 치솟았다. 터키 정부는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은행들의 외환 거래를 제한하는 긴급 대책을 내놨다. 터키 중앙은행도 시중 은행에 필요한 ‘모든 유동성’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지급준비율을 낮추는 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시장 불안이 해소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사진)은 시장 불안을 외부 공격 탓으로 돌리고 여전히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다.
터키 은행규제감독국(BDDK)은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화·리라화 스와프 거래와 현물·선물 외환거래를 은행 자본의 50%까지만 허용하기로 전격 발표했다. BDDK는 외화거래 비율을 매일 정산해 기준치 이하일 때만 신규 거래 또는 거래 갱신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침을 내놨다.
터키 중앙은행도 시장 안정화에 나섰다. 유동성 공급을 늘리기 위해 시중은행의 리라 채무 지급준비율을 2.5%포인트 낮췄다. 지급준비율을 낮추면 은행의 가용자금이 늘어난다. 담보 외환예금 한도도 기존 72억유로에서 200억유로로 높였다. 은행들에 한 달 만기로 외화예금을 빌릴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긴급 조치에 힘입어 7.2362리라까지 올랐던 달러당 리라 환율은 6.4469리라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터키의 외환위기 우려는 근본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풀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다. 케리 크레이그 JP모간 글로벌시장전략가는 “리라화 하락은 다면적인 문제”라며 “경상수지 적자나 외환보유액 측면에서 부실한 대외여건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 환경이 리라화의 취약성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터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은 5%를 넘어설 전망이다.
터키 정부와 미국의 갈등은 복합적이다. 쿠르드족에 대한 미국의 지원, 이란·러시아와 터키의 안보협력 강화 등이 두루 얽혀 있다. 터키에 억류된 미국인 목사의 석방 문제도 핵심 쟁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 터키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두 배로 인상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2일 연설에서 “(최근의 경제적 어려움이) 터키를 노린 음모에 따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에선 에르도안 대통령이 기준금리를 인상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레이먼드 리 호주 캡스트림캐피털 이사는 “터키는 그동안 장기적 경제 안정을 희생시키면서 부채를 늘렸고 단기적 경제성장을 꾀했다”며 “현재 연 17.75%인 기준 금리를 30%까지 올려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가가 급등한 터키가 지난달 기준금리 인상 대신 동결을 선택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시장 의구심을 키웠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1일에도 금리가 빈부격차를 부추기는 착취 수단이라고 비난하는 등 구두 개입을 해오고 있다. 터키 물가상승률은 지난달 15.9%에 달했다.
로버트 피어슨 전 터키주재 미국대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터키 위기 타개는) 전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달렸다”며 “그가 터키와 리라화를 살리기 위해 자존심을 굽힐 생각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란 전문가 의견도 있다. 기욤 트레스카 크레디아그리콜 선임신흥시장전략가는 “새로운 경제팀을 구성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해 경제를 완전히 재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