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포비아'에 갇혀 배척하기보다
우리 중고차 수출하는 시리아 난민처럼
중동과 연결고리 역할하도록 도와야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
갑자기 제주도에 몰려든 561명의 예멘 난민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난민 수용 반대 집회가 연일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청와대 게시판에는 예멘 난민을 반대하는 청원이 70만 건을 넘어섰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청원 참여 건수다. 지금까지 시리아 내전 피해자, 중국의 파룬궁 관련 박해자, 아랍 민주화 시위 이후 이집트인들의 난민 신청이 잇따랐으나, 이처럼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법무부의 협조를 얻어 사실관계 파악과 사태의 인과관계 조사를 위해 두 차례 제주도 현장을 다녀왔다.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난민 심사관·아랍어 통역관들과 토론하고, 제주도 난민청에서 교육 중인 예멘 난민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다. 현장 활동가들의 견해도 청취했다.
우리의 대응전략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무비자 제도를 활용해 일단 합법적으로 입국한 예멘인들을 강제로 송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엔이 규정한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맞은 예멘’에서 분명 피란을 왔고, 국내법을 위반해 범법행위를 저지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강제 송환할 수 없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협약이고 규범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나본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념이나 정치적 박해 등으로 심각한 위협 수준에 있는 난민은 많지 않아 보였다. 대부분은 고국에 남겨둔 가족을 위해 일할 목적으로 온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예단하기는 어렵겠지만 난민 신청을 한 549명의 예멘인 가운데 실제로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숫자는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우리 정부의 지난 23년간(1994~2017년)의 누적 난민 인정률 2.4%를 크게 웃돌지 않을 것이다. 또 일부는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아 국내에 거주할 권리를 얻을 것이지만 그런 경우는 전체 난민 신청자의 6.9%에 불과하다. 유엔난민기구가 발표한 선진국 평균 38%의 인정률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 수치는 우리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취해야 할 난민정책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번 예멘 난민 사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특징은 이슬람권 난민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유독 강했다는 점이다. 실상은 이미 시리아 난민 1120명이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고 국내에서 일하고 있고, 제주도에서만 1500여 명의 인도네시아인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내전을 피한 시리아인들 대부분은 서울의 유명 중고차 시장이 있는 장안동 일대에 진을 치고 중고차 수출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그 결과 미(未)수교국인 시리아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약 70%가 한국산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다. 시리아 난민들이 중동과의 중요한 경제적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들은 지적 수준이 매우 높은 엘리트층으로 조사됐다. 대학생과 기자, 약사와 공무원이 섞여 있고 대부분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난민 신청자 중 47명은 여성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가장 유용한 노동력은 단연 젊은 남성들이다. 이것은 전쟁에서 파생되는 기본적인 난민 구도다.
조만간 1차 난민 심사가 마무리되면 제주의 예멘 체류인들은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떠날 것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이 하루빨리 제주를 떠나고 싶어 한다. 2005년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하고 역사적 아픔과 4·3 사건의 상처를 뛰어넘어 화해와 치유의 성지로 부각시켜왔던 제주도는 난민조차 살기 힘든 공간으로 비쳐질까봐 걱정이다. 국제규범과 국민의 눈높이 사이에서 제도를 정비해 무분별한 난민 유입은 막아야 한다. 다만 ‘이슬람포비아’와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에 갇혀 건강한 담론 대신 괴담을 퍼뜨리고, 그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나 성범죄자로 예단해 궁지로 모는 것은 옳지 않다. 되돌릴 수 없다면,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하고 후일 가족 품에 돌아가 예멘과 한국 사이의 긍정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것이 성숙한 글로벌 시민의식의 출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