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쓰가 가즈히로 파나소닉 CEO "5% 수익 못내면 정리"… '버리기 경영' 통했다

입력 2018-08-09 16:38
수정 2018-08-16 17:04
몰락의 길 걷던 파나소닉 '구원투수'
90년 주력 家電 줄이고 車배터리 투자

B2C서 B2B로 체질 개선
수익성 악화된 소비자 가전 버리고
배터리·건축자재 제조로 방향 급선회

"모든 고름 짜내야 했다"
597개 자회사 통폐합하며 구조조정
본사 직원 7000명서 130명으로 감축

위기돌파 일단은 성공
영업익 2년새 65% 늘어 3805억엔
테슬라 상황따라 실적 좌우 극복해야


[ 김형규 기자 ]
야심 차게 문을 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10곳 중 9곳은 10년 안에 사라진다. 미국 스타트업의 10년 생존율은 10%에 불과하다는 게 CB인사이츠 집계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연구에서도 창업한 스타트업의 절반은 5년 내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세기 동안 살아남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폐업 이유 1위(43%)는 시장에서 이들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으로 조사됐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출발한 기업이라도 급변하는 시장 기호를 맞춰 변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 점유율이 높은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제조업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126년 역사의 제너럴일렉트릭(GE)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철도와 전구, 산업용 엔진 사업 등을 잇달아 매각하며 몸집을 줄이고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다. 올 들어 GE는 미 증시를 대표하는 다우지수 30개 종목에서도 제외돼 충격을 줬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일본의 대표 전자업체인 파나소닉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2011년 무렵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진 손실 때문에 존폐 위기로 내몰리기도 했다. 2012년부터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주력 사업군부터 재정비하고 기업 체질도 확 바꿔야 했다.

파나소닉은 그렇게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위기 극복을 주도한 인물은 2012년 난파선 선장으로 부임해 6년째를 맞은 쓰가 가즈히로 최고경영자(CEO)다. 포천은 “쓰가 사장의 비상 경영이 아니었으면 파나소닉은 파산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기업 전문지 엔터프러너는 “스타트업을 꿈꾼다면 파나소닉의 100년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변화 외면한 고집이 부른 위기

파나소닉은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24세의 나이에 1918년 창업한 기업이다.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라는 이름으로 직원 2명과 함께 임대주택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건전지, 자전거 램프 등 초기 제품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사업이 커졌다. 1929년에는 매달 15만 개의 자전거 램프, 5000개의 배터리를 생산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1930년 세계 대공황이 본격화됐지만 이 회사는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하지 않았다. 감동받은 직원들은 스스로 영업사원이 됐고 회사 매출은 반년 만에 예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황폐화됐을 때는 온 국민의 희망이 되기도 했다. 그 무렵 파나소닉은 네덜란드 필립스와 제휴를 맺고 전구, 형광등 등의 분야에 진출했다. 1950년대에는 세탁기, TV, 라디오 등 가정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전기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수출이 빠르게 늘었고 VHS캠코더, DVD플레이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사업이 휘청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세계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이 한창 떠오를 무렵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사업에 집중한 게 실수였다. 삼성과 LG가 LCD로 방향을 틀 때 파나소닉은 PDP만을 고집했지만 세계 시장은 LCD로 돌아섰다.

시장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한 파나소닉은 2011년 11조원 이상의 손실을 보게 됐다. 시장에서 더 이상 찾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회사 역시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파다했다. 뉴욕타임스는 “혼자 고립된 ‘갈라파고스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육지와 1000㎞ 떨어진 갈라파고스에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된 것처럼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 세계 시장에서 외면받았다는 분석이었다.

‘버리기 경영’으로 살아난 파나소닉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파나소닉에 쓰가 가즈히로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그는 ‘버리기 경영’의 묘수를 보여줬다. 90여 개에 달하는 사업군을 뜯어본 쓰가 사장은 90여 년간 주력해온 사업인 TV와 라디오 등의 비중을 확 줄였다. 가전제품의 수익성이 악화일로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PDP 사업에서 철수했다. 5% 영업이익을 내는 데 실패한 사업은 모두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았다.

대신 태양전지판과 테슬라에 납품하고 있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주택 건축자재 등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을 시작했다. 익숙한 분야는 아니지만 수익성이 있는 새로운 사업군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2012년 13.7%였던 자동차 사업 비중은 지난해 21.3%로 늘어났고, TV 제조는 같은 기간 7.2%에서 4.2%로 줄었다. 쓰가 사장은 “손실을 빨리 줄이는 전략이 필요했고 소비자용 가전제품 회사와는 전혀 다른 회사로 체질을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장 폐쇄를 통해 제품 위탁 생산을 포기하고 579개에 달하는 자회사를 통폐합하면서 구조조정에 나섰다. 7000명이던 오사카 본사 직원을 130명으로 줄인 것을 시작으로 모두 6만80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1950년 이후 매년 지급하던 분기별 배당금도 중단했다.

쓰가 사장은 “당시 경영진 중에는 파나소닉이 시장에서 어떻게 밀려났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다”며 “파나소닉은 그때 혼란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55세에 CEO가 된 쓰가는 1979년 입사해 30년 넘게 연구개발 분야에서만 일한 ‘파나소닉맨’이다. 그런 그가 그동안 애지중지해온 주력 사업에서 철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공황 때도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규모 감원을 추진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경제잡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고름을 짜내야 했었다”고 회고했다.

3년째 늘어나는 영업이익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파나소닉의 영업이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 2303억엔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3805억엔으로 2년 새 65% 넘게 증가했다. 올해 역시 전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3년 연속 이익이 증가하는 것이다. 지난해 전체 매출은 7조9500억엔을 기록했다. 최전성기였던 10년 전 매출엔 미치지 못하지만 회사가 크게 휘청였던 2011년과 비교하면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파나소닉은 올해 2분기 경영 실적이 호조를 보였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개선에 힘입은 것으로 본질적인 경쟁력 회복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미국 테슬라의 경영 상황에 따라 파나소닉의 실적이 지나치게 좌우되는 구조라는 점도 극복해야 한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