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 서울교통공사 사장 taehokim@seoulmetro.co.kr >
얼마 전 차를 타고 한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다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어린이 대여섯 명이 멘 책가방에 숫자 30이라고 크게 써진 형광색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이 커버는 ‘어린이 안전덮개’라는 것인데 겉면에 써진 30이라는 숫자는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의 제한속도 30㎞를 의미한다. 스쿨존 교통사고의 40%가 운전자 과실로 발생하자 이 구역을 지나는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숫자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말이나 그림보다 강력한 효과가 있다. 숫자가 지닌 명료성은 말이나 그림이 가진 모호성을 뛰어넘으며 설득을 위한 주요한 증거이자 도구로 기능해 왔다. ‘어린이 안전덮개’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 관리에 숫자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골든아워’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금쪽같이 귀중한 시간’이라는 뜻이다. 심폐소생술 응급처치에서 골든아워는 5분이다. 심장의 기능이 정지된 환자는 5분 이내에 응급조치가 시작되지 않을 경우 생존율이 25% 미만으로 급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8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40대 남성을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역 직원이 즉각적인 응급조치로 살려냈다. 비행기 사고에서 골든아워는 90초로 통한다. 비행기가 바다나 강에 불시착했을 때 구명복을 착용하고 탈출을 완료해야 하는 시간이다.
일명 ‘하인리히 법칙’으로 익히 알려진 ‘1 대 29 대 300’은 대형사고의 발생 징후를 실증적으로 밝힌 것으로 유명하다. 하인리히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원인을 ‘2 대 10 대 88’ 법칙을 통해 경고하기도 했다. 산업재해의 88%는 인간의 불안전한 행위로 인해 발생하고 10%는 안전하지 못한 기계적·신체적 상태 때문에, 나머지 2%는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 이유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작은 실수를 줄이고자 세심한 주의만 기울여도 산업재해의 88%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는 운행 장애 0건을 목표로 올해부터 ‘빵(0)데이’를 운영하고 있다. 한 달 동안 운행 중 장애로 전동차를 교체하거나 10분 이상 지연되는 건수가 0이 되면 해당 차량기지 직원들이 빵을 먹으며 자축하는 작은 이벤트다. 1월 창동차량기지를 시작으로 2월에는 신내차량기지, 천왕차량기지 직원들이 주인공이 되는 등 지금까지 여덟 번의 ‘빵데이’가 열렸다. 단 한 건의 장애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낸 직원들과 함께 빵 먹는 날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