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보다 많은 기업도산
일몰된 기촉법 회생 등 법제 정비
선제적 상시 구조조정 길 열어야"
전삼현 < 숭실대 교수·법학 >
지난 6월을 기준으로 일몰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재입법 여부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기촉법은 부실징후기업에 대해 채권금융기관이 주도해 신속하고 원활하게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률이다. 이 법은 한시법으로, 2001년 8월 제정·시행됐으며 일몰 후에도 다섯 차례나 재입법 또는 기한 연장을 통해 수명을 늘려 왔다. 제정 당시는 채권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합의해 부실징후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수행하는 관행이 정착돼 있지 못한 시기였다. 결국 금융당국이 개입해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 기촉법이다.
이에 대해 여당 의원들은 기촉법이 ‘좀비기업’의 연명 수단 내지는 관치금융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도산법 전문가인 대법관 후보자도 기촉법을 재입법하기보다는 ‘채무자 회생·파산법’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촉법 주무부처는 금융위원회인 반면 채무자 회생·파산법 주무부처는 법무부인 점을 감안하면 부처 간 이기주의로 보일 수도 있지만, 기촉법 재입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널리 확산돼 있지 않은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다만 채무자 회생·파산법으로 일원화하는 경우 부실징후기업은 신규 자금 지원 없이 구조조정만으로 경영정상화를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회생·파산제도를 통한 경영정상화뿐만 아니라 기촉법상의 워크아웃을 통해서도 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하겠다. 시장이 활성화되고 경제성장률이 높은 경우에는 부실징후기업도 회생절차를 통해 경영정상화를 달성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부실기업 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기촉법을 폐지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올 들어 6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도산 신청 건수는 836건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보다 더 많은 상황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13대 수출 주력 업종의 한계기업 수는 464개에 달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6.29%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해 종업원 10인 미만 영세업체의 상당수가 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면 최근 부실징후기업 증가는 정부실패에 기인한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그동안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기업의 재기를 돕는 구조조정 플랫폼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도산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도 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시점에서 채무자 회생·파산제도만으로 한계기업들의 구조조정 및 회생을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수조원에 달하는 최저임금 인상분을 정부가 보조해 주기보다는 일시적 부실 상태에 빠진 기업의 워크아웃을 지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기촉법을 상시법으로 재입법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동안 금융당국은 기촉법을 활용해 정부 입맛대로 구조조정하면서 채권자(은행) 손실을 보전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채권단 역시 워크아웃이 외형적으로는 채권단 주도로 구조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금융당국이 암암리에 은행에 압력을 행사하는 관치금융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는 기촉법이 재입법되거나 기한 연장을 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먼저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구조조정 3대 원칙으로 ‘엄정 평가’ ‘자구 노력’ ‘신속 집행’을 언급하면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엔 신규 자금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수차에 걸쳐 약속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금융위는 기촉법 기한을 2년 이상 연장하되, 그 기간 동안 위에서 언급한 3대 원칙을 구현할 수 있는 체계적인 법제 정비 방안을 제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