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지수, 가상화폐 규제 전보다 낮아져
암호화폐 가격 하락했지만 코스닥으로 자금 이동 이뤄졌다 보기 어려워
지난 1월 정부는 가상화폐(암호화폐) 규제안과 코스닥 활성화 방안을 같은 날 발표했다. 1월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는 △코스닥 스케일업 펀드 조성 △시장 자율성 제고 △상장요건 완화 등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을 확정한 바 있다.
이러한 정책에는 암호화폐 시장 자금을 코스닥 시장으로 이동 시키려는 의도가 담겼다. 정부의 발표가 있은 후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기자간담회를 통해 “2030 젊은 세대가 단기적이고 투기적인 거래를 많이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암호화폐 투자에 나선 젊은 층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반년 가량 지난 지금, 과연 암호화폐 시장 자금은 코스닥으로 몰렸을까.
그 대답은 ‘아니오’다. 정부의 규제안과 활성화 방안 발표 직후에는 정부 의도대로 흘러가는 듯 했지만 금새 한계가 다가왔다. 지난 1월10일 837.63으로 시작한 코스닥 지수는 1월 30일 장중 932.01까지 올랐지만, 이후 약보합을 지속하다 지난주 연저점인 748.89를 기록했다. 연저점 기록 후 반등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30일 773.00으로 장을 시작했다. 코스닥 시장에서 암호화폐 시장으로 자금이 유출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던 12월 말, 1월 초보다 낮은 수치다. 암호화폐 규제로 반짝 상승했지만 추락을 거듭하며 결국 본전도 건지지 못한 셈이다.
암호화폐 시장은 어떨까. 법무부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발표 이후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를 부인했지만,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대표적인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가격은 정부 발표 직전인 10일 2131만원으로 거래를 마쳤는데, 발표 당일 1410만원까지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2월 6일 662만원까지 밀려난 뒤 1400만원까지 반등했고 이후 보합을 거듭하다 30일 오전 8시 기준 92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 발표 직전 대비 43% 수준이다.
정부의 규제 발언이 단기간에 효과를 발휘했고, 규제 의지를 알렸다는 데 의의를 둔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으로 한국 암호화폐 시장에 남은 건 자금 증발과 시장 위축,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 감소 정도로 요약된다. 이런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은 많은 이들이 팔고 돈을 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또 그렇게 번 돈이 코스닥 등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정부의 노림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암호화폐 시장은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여있고 참여자 대부분이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가령 1500만원에 비트코인을 샀다면 가격이 2500만원까지 올랐을 때는 1000만원 이득이겠지만, 662만원까지 추락했다면 838만원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코스피나 코스닥이라면 국내에서 투자한 누군가가 그만큼의 이득을 가져갔겠지만, 암호화폐 시장에서 그런 기대를 품기 어렵다. 한국 입장에서는 결국 자금이 '증발'한 것이다.
정부의 규제 발언 이후 암호화폐 시장에서 나타난 변화 한 가지는 한국이라는 국가의 영향력 감소다. 암호화폐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24시간 작동한다. 각국의 정책이 가격 변동 요소로 끊임없이 작동하는데, 한국의 경우 거래소 폐쇄 발언과 ICO 금지 방침이 나온 이후 그 영향력을 크게 잃었다.
이달 금융위가 암호화폐 정책을 전담할 금융혁신기획단을 신설했을 때도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암호화폐를 부정했던 한국 정부가 시장을 감독하고 관리할 조직을 신설한 것은 긍정적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한국 정부가 이미 세계 시장에서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낙인찍혔다는 의미다.
또 외국인의 입금이 허용되지 않던 채로 대표 거래소 원화 입금이 중단되며 현금 흐름도 감소했다. 이에 더해 암호화폐 가격이 떨어지며 투자됐던 자금마저 사라져버렸다. 암호화폐 투자 시장을 주도하던 한국이었지만, 암호화폐에 배타적인 정부 기조와 투자자금 감소가 맞물리며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는 “이런 상황이면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암호화폐 시장에 유입됐던 현금은 줄였지만, 그 자금이 코스닥 시장으로 보내는 것에는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여우와 두루미가 같은 그릇에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정책은 실험의 장이 아니라 우리네 주머니 사정으로 연결되는 현실과 직결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시장을 최대한 건전하게 이끌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할 때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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