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본주의 롤모델이었던 미국, 왜 '자유 경쟁'서 멀어졌나

입력 2018-07-26 20:40
수정 2018-10-24 00:00
사람들을 위한 자본주의

루이기 진갈레스 지음 / 김석진·박영준 옮김
한국경제신문 / 392쪽│1만8000원

실력에 기반해 보상받던 미국
2008년 금융위기 겪으며 변질
도덕적 해이·과도한 로비 등
이탈리아 '정실주의' 닮아가

"경쟁 막는 보호무역주의
일시적 효과일 뿐 해결책 아냐
유일한 수혜자는 낙오자들" 비판


[ 윤정현 기자 ]
족벌주의(nepotism)라는 용어를 만들고 정실주의(cronyism) 개념을 완성한 나라.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는 나라. 젊은이들이 “공부하라”는 말보다 “힘 있는 사람의 가방을 나르라”는 말을 듣는 나라. 정치적 연줄을 얻거나 정부 계약을 따야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

신간 《사람들을 위한 자본주의》의 저자인 루이기 진갈레스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설명한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88년 미국으로 이민왔다. 당시 처음 마주한 미국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저자는 “어떤 목표든 이룰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치 취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마침내 내가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능력에 의해 꿈의 한계가 정해지는 나라에 당도했다”고 감격했다.

미국에서는 정치적 연줄이 아니라 실력에 기반해 보상받았다. 경쟁을 통해 더 낮은 가격으로 더 좋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했다. 낮은 진입 장벽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샘솟게 했다. 사회계층 간 이동 기회는 많았고 비즈니스에서 불필요하게 시간을 끌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회사를 설립하는 데 62일이 걸렸지만 미국에서는 4일이면 충분했다. 저자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탈리아의 불공정한 시스템을 새삼 되새겼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은 달라졌다. 저자는 미국이 이탈리아 스타일의 정실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퇴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정실주의는 인센티브를 없애며 취업 기회를 줄였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경제성장 잠재력을 강탈한 것이 이것”이라며 “위태로운 것은 돈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라고 강조한다.

책은 현재 변질된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그 심각성을 진단하는 1부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2부로 크게 구분된다. 사익만 채우려는 기업과 도덕적 해이에 빠진 정치인, 승자 독식의 경제 등 저자가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리는 미국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은 한국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기에 2부에 더 집중하게 된다.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경쟁’을 되살리는 것이다. 불평등 문제도 정부의 개입이 아니라 자유시장의 확대와 경쟁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것을 통해 소득의 균등이 아니라 기회의 균등이 보장될 수 있다. 시장 윤리를 다시 세우고 과도한 로비를 제한하며 금융 및 정책 자료들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미국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서술이고 변화를 위한 열정적인 외침”이라고 책을 소개한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에서 2014년 출간된 이 책의 외침을 미처 듣지 못한 듯하다. 저자는 “군사 및 정치적 힘은 여전히 미국에 집중돼 있지만 경제적 효율성은 그렇지 않다”며 “이 상황에 대한 하나의 자연스러운 정치적 반응이 보호무역주의”라고 언급한다. 문제는 무역의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해결책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외국인들의 참가를 막았을 때 골프 팬들은 외면하고 스폰서는 이탈할 마스터스 대회를 예로 들며 “보호주의의 유일한 수혜자는 현재의 낙오자들일 것”이라고 꼬집는다.

“과도한 소득 불평등에 대한 단순한 해결책은 과세를 통한 재분배”라는 대목은 부자 증세에 매달리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저자는 “사회주의 국가나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는 이 해결책은 부를 일구고자 하는 의욕을 약화시켰고 결과적으로 국가의 번영과 성장 가능성을 손상시켰다”고 지적한다.

책에서 거론하는 약점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최상의 희망을 제공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에 결론은 낙관적이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변질됐지만 ‘다시 변할 수 있다’는 믿음도 확고하다. ‘미국은 힘 없는 자들을 보호하는 긍정적인 포퓰리즘의 전통을 갖고 있다’거나 ‘미국은 스스로 개혁할 능력을 DNA 속에 갖고 있다’ 등의 표현에서 미국 사회와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저자의 신뢰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책은 실력에 따라 보상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 주는 자본주의의 기본을 되돌아보게 한다. 기업인과 정치인뿐 아니라 경제 정책 결정자 및 집행자들도 두루 읽어볼 만한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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