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스튜어드십 코드, 조금 이르다

입력 2018-07-26 18:56
이재석 < 카페24 대표 jslee@cafe24corp.com >


최근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글쓴이는 학창시절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평양 방문을 적었다고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는 불가능한 목표의 최정점이었지만 얼마 전 그는 실제로 평양 땅을 밟았다.

필자는 최근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느낀다. 앞서 언급한 평양 방문도 급격한 사회 발전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스튜어드십 코드’도 결을 같이한다. 이 주제에 대한 논의마저도 대한민국 발전 시그널 중 하나로 느껴져 기쁜 마음이 없지 않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통해 위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잘되면 기관투자가와 투자기업 간 대화와 협력으로 기업가치가 상승해 국가 산업 및 경제 발전을 돕는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이유만 보면 발전된 사회에 걸맞은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시장경제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중요한 문제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로 움직인다. 시장경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비해 다수의 판단 주체가 참여함으로써 합리적으로 동작하는 구조가 장점이다. 컴퓨터로 비유하면 전체 프로세스 동작에 많은 CPU가 사용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다만 합리는 이치에 맞게 움직이지 인간을 중심으로 두지 않는다. 시장경제의 중심축을 인간으로 이동한 수정자본주의가 현재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은 투자를 통한 장기적 성장을 원한다. 반면 펀드 운용 기업이나 기관은 상대적으로 단기 이익과 배당에 집중한다. 여기서 정부, 국민, 펀드 등 전체 이해관계자 간 원활한 소통과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해자 간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자칫 스튜어드십 코드의 핵심인 강력한 기관 참여는 시장참여자가 아니라 시장설계자 역할을 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또 국민연금의 경우만 보더라도, 기금 운용 규모는 전 세계 3~4위 수준일 만큼 막강하다. 시장경제가 합리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민간펀드들이 참여하고, 성과가 탁월한 펀드에 자본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이상적 순환이 형성돼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가진 압도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한국 상황에서는 조심스러운 문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집중돼 있는 권한이 적정하게 분산된 뒤 도입하는 게 적절하다. 장기적 측면에서 권력 분산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현재 시점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감독기관의 개혁적인 방안으로 적절히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 도입은 한 번 실행되면 다시 번복하기 어렵다. 사회구조와 경제 현황을 면밀히 고려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