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SNS 이용한 '플랫폼 노동'이 노조관계 바꿀 것…노동환경 변화 대응 가능토록 노동법 개정해야"

입력 2018-07-26 11:19
수정 2018-07-26 11:42
일의 미래와 한국 노사관계를 진단한다
김동원 ILERA 회장-데보라 그린필드 ILO 사무차장 대담

"한국 노사관계 나쁜 부분만 왜곡돼 부각
ILERA 서울 세계대회는 바로잡는 계기될 것"

"여성이 주로 담당하는 '돌봄 노동'은 대부분 무급
유급 노동시장 여성 참여기회 대폭 늘려야"




‘노사관계 올림픽’으로 일컬어지는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세계 대회가 서울 코엑스에서 27일까지 5일간 열린다. 18번째 ILERA 세계 대회인 ‘2018 서울 세계 대회’에는 62개국에서 200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행사를 이끌고 있는 김동원 ILERA 회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대회에 참가한 데보라 그린필드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을 만났다. 이들은 ‘일의 미래, 노사관계의 미래’와 한국 노사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전망과 진단을 내놨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차기 고려대 총장 후보로도 거론된다. 그린필드 사무차장은 30년 이상 노동법 변호사로 활동해 왔고 미국 노동성을 거쳐 ILO에서 정책·연구·통계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대담은 최종석 한국경제신문 노동전문위원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ILERA 서울 세계대회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 노사관계에는 어떤 시사점을 주나.

▷김동원:한국은 과거 노동탄압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해 ‘노사관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ILERA 세계 대회 개최 자체를 꺼린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다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이 개최하게 됐다. 외국기업이 한국 투자하기를 기피하는 주된 이유로 북한 핵문제와 노사문제가 꼽힌다. 이번 서울 세계대회는 한국의 노사관계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꾸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의 노사관계를 평가하자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쯤 된다. 그런데도 투쟁만 일삼는 강성 노조만 해외에 보도되면서 노사관계의 부정적인 모습이 부각됐다. 미국 LA타임스는 한국을 ‘죽을 때까지 파업하는 나라(Strike to Death)’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한국 기업 가운데 노사관계가 원만한 곳도 많다. 인사와 직원교육 제도가 치밀하게 잘 짜여져 있고, 복지도 좋은 편이다. 일부 강성노조에 의해 이런 장점들이 가려져왔다.

▷그린필드:1919년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설립된 국제노동기구가 내년이면 100주년이 된다. 불평등 해소와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 ‘일의 미래’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서울 세계대회는 의미가 크다. 기술 발전은 일자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격차를 키워 불평등을 확대시키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양성 평등 제고, 일과 가정의 양립, 직업훈련 강화 등 적절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사회:이번 세계대회의 주제인 ‘일의 미래’를 보다 구체적으로 전망한다면.

▷김동원:장기 고용과 평생직장 개념이 생긴 것은 20세기 현대자본주의 이후 불과 100년 남짓이다. 산업혁명 이후 19세기에는 가내 수공업, 도제식 교육, 장인 위주의 프리랜서 노동이 대세였다. 2010년 이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대체하는 ‘플랫폼 노동’이 늘면서 고용형태가 과거 19세기의 외형으로 회귀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이란 애플리케이션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디지털 플랫폼에서 노동력이 거래되는 근로 형태를 말한다. 플랫폼 노동은 노무 제공자가 사용자에게 종속되지 않는 자영업자에 가깝다. 배달대행앱, 대리운전앱, 우버택시를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문제는 플랫폼 노동이 급속히 늘고 있지만 노동법상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분류돼 처우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근속기간이 짧고 근무형태가 달라 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고 설령 노조를 만들어도 법상 노조로 인정받지 못한다. 제조업 기반의 전통적인 노조의 모습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프리랜서 등을 중심으로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외국인근로자쉼터 같은 준노조가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 노조-비노조 구분이 사라지고 근로자·이민자·여성·노인·인권 등 다양한 문제를 포괄하는 단체가 기존 노조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그에 따라 노사관계나 노사분규의 양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준노조는 파업보다 거리로 나서서 여론에 호소하는 일이 많다. 정부를 압박해 법을 바꾸는 것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 맞춰 노동법을 개정하는 등 정부의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이번 서울 세계대회가 학문의 발전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정책 역량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내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는 국제노동기구(ILO) 관련 특별 세션도 있다.



▷김동원:ILO를 학문적으로 살펴보는 자리다. ILO는 칭송과 비판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ILO가 비판받는 이유는 선진국 노동 문제에는 입을 다물고, 후진국에는 군림하는 듯한 태도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ILO가 강제수단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지적도 많다.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못하는 국가들에 단지 압박을 주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ILO의 긍정적인 측면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이 혹사당하는 개발도상국에서 ILO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ILO가 인류의 근로조건을 공론화하고 향상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린필드:1919년 설립된 ILO는 1945년 필라델피아선언에 기초해서 사회적 정의 실현에 앞장서 왔다. 특히 노동자, 사용자, 정부가 같이 참여하는 삼자기구로 협의를 바탕으로 노동권과 인권 향상에 기여해 왔다. 하지만 집행 수단이 취약하다는 비판도 동시에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LO는 앞으로 기술변화가 가져올 일의 미래에서 증가하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사회: ILO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등 현실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연구를 통해 정책권고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한국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을 텐데.

▷그린필드:전 세계적으로 유급 노동시장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에 비해 실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은 훨씬 적다. 가정과 사회에서 이뤄지는 돌봄노동의 경우 여성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일은 대부분 무급인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포함해서 ILO는 여성 일자리에 대해 연구와 정책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여성고용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크게 봐서 고용상 기회 균등, 여성들의 대표성 확대, 동일임금, 일터에서의 성폭력 문제 해소 등의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김동원:여성인력의 노동시장 참여를 제고하는 것은 실제 기업의 경영성과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도 다수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생 남녀 비율은 거의 반반이지만 대학교수만 하더라도 여성은 10%가 채 되지 않고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도 1% 선이다. 국가적으로 볼 때도 여성들에게 더 많은 고용 기회가 보장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

▷사회:한국은 정부의 친노동 정책기조에도 불구하고 노사정 대화가 현재 중단돼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김동원:참여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참여정부가 그렇게 사회적 대화를 원했지만 민주노총은 나오지 않았다. 파업도 아주 잦았고 구속된 노동자도 많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좋다고 본다. 일단 민주노총이 나오지 않았나. 20년 만에 처음이다. 긍정적인 신호다. 노사정이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미세한 움직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밸런스다. 게다가 우리나라 노사는 작은 일에는 번번이 대립하다 큰 위기를 만나면 대의를 위해 뭉치는 경향이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금모으기를 하는데 노사단체가 앞장서기도 하지 않았나. 이번 ILERA 서울 세계대회에서 양 노총, 경총, 고용노동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참석한 모습은 의미가 작지 않다.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
1966년 설립된 국제고용노동관계학회(International Labour and Employment Relations Association, ILERA)는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노동기구(ILO)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고용노동 분야의 최대 학술단체로 꼽힌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34개 주요 국가 학자들과 정책 관계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노동법 등에 대한 학술연구와 정책을 개발한다. 냉전시대에 태어난 ILERA는 처음 명칭이 국제산업관계학회(The International Industrial Relations Association, IIRA)였다. 1970~80년대를 지나면서 산업관계학이라는 명칭이 협소하다는 평가가 나왔고, 2009년 지금의 ILERA로 바뀌었다. 노동관계를 넘어 전반적인 고용 문제를 포괄하자는 의미에서다.

최종석 기자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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