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신사업 찾고 벤처는 자금 수혈… 혁신 생태계 조성

입력 2018-07-24 17:30
차세대 성장전략 오픈이노베이션
(1) 대기업 - 스타트업 이종결합

SKT, 자사 지원받은 제품 사주고
GS홈쇼핑은 펫스타트업 입점시켜
단순 M&A 벗어나 사업 파트너로

사무실 내주고 전문가 멘토링
기술벤처 발굴·육성도 활발


[ 김진수/이우상 기자 ]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은 “중소기업은 스피드 보트”라고 했다. 빨리 움직이며 세상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의 부족한 곳을 채워줄 좋은 기업을 찾으라”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글로벌 기업들은 혁신의 동력을 외부에서 찾으며 성장했다. 구글 P&G 등은 물론 중국과 일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도 삼성페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루프페이를 인수했다. 다른 국내 대기업도 벤처기업 물색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결합이 새로운 성장전략의 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돈, 사람, 네트워크를 모두 갖춘 대기업이 벤처 생태계에서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 을지로2가 T타워 31층 오픈라운지. SK텔레콤 직원들이 회의실로 쓰는 이곳의 벽면엔 스마트필름(글라스테리어)이 붙어 있다. 리모컨을 누르면 필름이 투명해진다. 또 누르면 불투명해진다. 회의할 때는 바깥이 보이지 않게 해 외부 시선을 차단하고, 회의가 없을 땐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할 수 있다. 이 필름은 SK텔레콤의 벤처지원 프로그램 ‘브라보! 리스타트’를 통해 도움을 받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비츠웰이 개발했다.

SK텔레콤은 스타트업이 제품을 판매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제품을 쓰고 있다. SK텔레콤은 2013년 이후 170여 개 벤처기업을 지원했고 30여 개사와는 공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결합인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한 지원, 직접투자, 벤처캐피털을 통한 투자, 건물과 컨설팅 제공 등 인큐베이팅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단순 지원에서 신성장동력 확보까지 대기업의 목표도 다양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모레퍼시픽·농심 ‘스타트업 잡기’

아모레퍼시픽은 24일 서울 용산 본사에서 5개 스타트업을 다른 대기업과 벤처투자자들에게 소개하는 테크업플러스 데모데이 행사를 열었다. 아모레퍼시픽과 퓨처플레이가 함께 육성한 뷰티 헬스케어 분야의 스타트업이다.

아모레는 성장 잠재력이 있는 초기 뷰티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6개월간 투자금과 사무 공간, 교육 및 멘토링 등을 지원했다. 이들이 추가 투자를 받거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한 행사다. 아모레는 이렇게 육성한 기업 중 선별해 직접 투자함으로써 미래 성장동력도 확보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이날 배달대행업체 메쉬코리아에 3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메쉬코리아에 투자하는 것은 O2O(온·오프라인 연계)와 자율주행차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1월 ‘동남아 우버’로 불리는 싱가포르 그랩에 270억원을 투자하는 등 O2O 시장에 관심을 보여왔다.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만도는 이날 미래 자동차 기술 분야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만도 모빌리티 테크업플러스’를 마련했다. 오는 10월부터 6개월간 모빌리티와 관련된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육성한다. 초기 창업 투자금 5000만원을 지원하고, 졸업 심사를 통과하면 만도가 1억원(만도 지분율 7.5% 획득)을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고 신규 투자 및 사업 제휴를 모색할 방침이다.

식품업체인 농심은 푸드테크 분야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성장동력을 마련한다. 하반기 대상 스타트업 모집에 들어갈 예정이다. 농심 관계자는 “푸드테크 분야는 배송 등에서만 활발한 초기 단계”라며 “화학공학이나 정보기술(IT) 같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재료를 혁신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만도, 농심 모두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가 벤처 지원의 중요한 목적이다.

시너지 효과 나는 벤처 투자

투자나 지원한 벤처기업과 함께 사업을 하는 대기업도 나오고 있다.

GS홈쇼핑은 대기업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벤처 투자를 하고 있다. 2011년 이후 올해까지 2700억원을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투자 수익과 성장동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시간 내 반려동물 사료를 배달해주는 펫프렌즈 등과의 협업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GS홈쇼핑은 지난 4월 반려동물 관련 제품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반려동물 전용관’을 선보였다. 사용자가 사료를 주문하면 펫프렌즈가 2시간 내 배달해준다.

한화그룹은 금융 계열사 중심으로 발빠르게 스타트업과 협업에 나서고 있다. 한화생명이 2016년 문을 연 ‘드림플러스63 핀테크센터’에는 스타트업 23곳이 거쳐갔고 다음달 13개사가 새롭게 들어온다. 졸업한 스타트업 중 센스톤은 한화손해보험과 인증 솔루션 공급 계약을 맺었다.

롯데그룹은 롯데엑셀러레이터를 통해 벤처 지원을 하고 있다. 6개월간 창업 자금 최대 5000만원 지원, 사무공간 제공, 전문가 자문 등을 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엘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30%가량이 롯데그룹 계열사와 공동 마케팅, 계약 체결 등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산업화를 거치며 대기업들은 최고 인재와 자체적 기술력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며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폐쇄적인 혁신이 한계에 달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스타트업과의 공생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수/이우상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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