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브렉시트' 카드 내놓은 메이 총리
'단일시장 이탈' 강경파 무마하기 어려울 것
김흥종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서 영국 국민이 탈퇴를 선택한 지 2년하고도 한 달이 더 지났다. 탈퇴 협상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외무장관과 브렉시트 담당 장관 두 명이 사임하면서 내각은 동요하고, 테리사 메이 총리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으며, 북아일랜드를 영토로 하는 영국의 국가 정체성은 도전받고 있다. 메이 총리의 지시에 따라 장관들은 유럽으로 날아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를 건너뛰고 회원국과 직접 담판을 지으려고 하는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 브렉시트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어쨌든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윈윈’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협상이 진행되면서 북아일랜드 문제 같은 해묵은 이슈들이 터져 나오면서 브렉시트 협상은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7월6일부터 영국 총리의 공식 별장인 체커스코트에서 이뤄진 장관 모임 끝에 나온 브렉시트 안은 백서로 나오기도 전에 브렉시트 강경파인 협상담당 장관과 외무장관의 사임을 불러왔다. 영국이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을 떠난다는 당초의 원칙을 벗어난 ‘소프트 브렉시트’라는 것이 그 이유다. 7월16일 의회를 간신히 통과한 영국의 브렉시트 안은 강경파의 입장을 반영한 고육지책이다. 기본적으로 체커스 안은 영국과 EU의 경제관계를 자유무역지대로 설정하면서도 촉진된 관세협정(FCA)에 따라 EU 측 관세를 대신 걷어주는 방식을 제안했는데, 이 방식은 브렉시트 강경파 그룹인 유럽연구단체 측의 요구에 따라 EU도 동일하게 영국을 대신하는 역할을 해야 허용한다는 조건부로 바뀌었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 문제는 작년 말 1차 협상의 합의가 가져올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파의 태도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작년 말 양자가 합의한 안전장치(backstop) 합의에 따르면 북아일랜드는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양자 간 유일한 육상 국경에서 어떤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두 섬 사이의 바다가 양자 간 실질적인 경제 국경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일랜드의 독립에도 불구하고 북아일랜드를 계속 붙들고 있는 영국에는 이런 상황이 매우 불편하다. “어떤 영국 총리도 이런 조건에 찬성할 수 없다”는 메이 총리의 발언은 영국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영국은 상품과 사람의 자유왕래를 유지하는 특수관계를 그대로 인정받으면서도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을 떠날 수 있는 편법을 제안하고 있으나, EU는 사기 가능성과 통관검사의 복잡성으로 인해 이런 편법이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EU보다 영국의 관세율이 더 낮은 제품을 제3국에서 수입할 때 영국으로 들여와 아일랜드로 보내는 우회로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지가 당장의 문제로 떠오른다.
필자는 몇 해 전 지금의 유럽연구단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제이콥 리스-모그 의원의 연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EU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그의 연설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가 구사하는 고전적인 영어가 인상적이었다. 형식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고전을 전공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과 함께 영국적 정체성을 유럽과 구별하려는 이런 전통적 접근방식은 브렉시트 강경파의 크나큰 자양분이자 협상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